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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혁 Oct 31. 2020

슬퍼하는 사람이 없으면 실패한 인생인가

술자리에서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내가 죽을 때 진심으로 슬퍼할 사람이 많아야 잘 산거지!"      


이 말에 당시 나는 ‘그런가보다’라는 생각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뒤늦게서야 ‘세상을 떠날 때 슬퍼할 사람이 많아야 잘 산 인생일까?’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정말 저 말은 맞는 말일까? 사람들이 슬퍼한다는 의미가 뭐지? 사람들이 슬퍼한다는 것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일 때, 나와 부딪히는 사람보다 잘 맞는 사람일 때, 서먹한 사이보다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사람일 때 우리는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 한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도 아무런 느낌을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람의 죽음 자체가 슬픈 것이 아니라 나에게 긍정적인 도움이 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는 슬퍼한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긍정적인 도움이 되는 사람의 어떤 사람인가. 나를 고집하기보다 타인에게 맞추는 사람, 내가 가고 싶은 곳보다 남이 가고자 하는 곳에 함께 가는 사람, 받기보다 남에게 주는 사람이다. 결국 남에게 맞히는 사람, 즉 타인의 눈을 많이 의식하며 살아갈수록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많은 사람이 슬퍼하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말을 했던 친구도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많은 영향을 받는 친구였다.      


‘슬퍼해 줄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것’에 무게을 두면 눈치보며 인생을 살게 된다. 어차피 한번은 죽는 것이 사람이다. 지나치게 남의 눈치보며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할 때 그것이 실패한 인생이 아닐지.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살면서 남 눈치 크게 보지 말고 환경이 허락하는 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기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좋은 인생 아닐까.      


아내와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개발과 인생을 즐기는 노력을 함께 병행했다. 평일에는 직장과 학교를 병행했고 주말에는 함께 스포츠댄스 동호회에 가입해 스트레스를 풀었다. 우리는 아내의 병이 조금씩 악화되고 있음에도 죽음 이후의 일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여겼던 것 같다. 아내가 병원에서 자서전을 집필하겠다 결심했을 때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픈 사람이 무슨 책을 써’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를 격려하며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응원했다. 아내도 내 말에 큰 힘을 얻어 실망하지 않고 도전했던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다면 아내의 자서전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인기는 물거품 같은 거예요" 


연애인이나 정치인이 자주하는 말이다. 

자기 기분이 좋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들의 좋은 반응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 타인의 종처럼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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