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장 먼저 입대한 친구가 있었다.
우리들은 군대 가면 죽다 살아날 정도의 고생을 한다는 소문에 침울한 마음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마음의 안식을 찾아 우리는 바닷가로 송별여행까지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입대일을 앞두고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마음이 좋지 않아 입대하는 논산훈련소까지 따라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친구를 들여보냈다.
그 뒤로 친구들은 연달아 하나 둘 입대했고 군대도 갈만하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을 무렵, 마지막 입대하는 친구의 입영소식을 들었다. 불과 1년 전에 첫 입대한 친구와는 다르게 우리 모두에게 군대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자기 후임으로 들어오라며 놀리기까지 했다. 그러다 갑자기 드는 생각이..
첫 입대한 친구는 좋은 입대이고 마지막에 입대한 친구는 안 좋은 입대일까?
그렇다면 과연 오래 살면 좋은 걸까? 반면 빨리 죽으면 안 좋은 것일까?
세상을 떠난다는 의미는 모든 사람과 지금까지 맺은 모든 것과 이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젊은 날 죽는 것은 이별할 이들이 많이 살아있기 때문에 그 죽음이 슬픈 것이며 마지막에 죽는 것은 살아생전 많은 이들과 많은 이별을 겪었다는 의미다. 100세를 채우고 마지막에 떠나는 이는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주위의 모든 사람이 떠나는 것을 눈으로 봐야 한다. 한명씩 떠날 때마다 가슴이 아플 것이다. 오히려 헤어짐의 고통을 수십 배 겪고 세상을 떠나는 것과 같다. 결국 이별의 슬픔에 대한 양은 비슷하다.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과 한 번의 이별을 겪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오히려 마지막 떠나는 길이 쓸쓸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빨리 세상을 떠난다고 나쁜 일도, 오래 산다고 좋은 일도 아니다. 그저 꽃 한 송이 피었다 시드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죽음을 막을 수도 없지만 막는다 해도 축복은 아닐 것이다. 잠시 연명하는 것이 옆에 있는 가족에게는 위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병원에 누워 간병 받는 당사자에게 좋은 일인지는 고민해 볼 일이다. 살아있으면 삶에 충실하고, 아프면 적당히 병을 고치면서 살고,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