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에 능통한 사람은 상대를 변화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 편안함을 느낀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의 문을 열며 더욱 깊이 있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반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유연함이 부족하다. 자신의 생각대로 상대를 변화시키려 애쓰며 자신의 생각이 정답인양 말할 때가 많다. 친구 간 불화가 발생하는 이유도 많은 경우 상대를 내 생각대로 하려다 마찰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또 부부간에도 부부라는 명분을 내세워 상대에게 변화를 강요해 싸움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주위에서 이런 상황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음 앞에 선 누군가에게 이런 태도를 취해서는 결코 안 된다. 곧 죽음이 다가오니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투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직접적인 말뿐 아니라 말의 속뜻이 그러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아주 큰 실수이다. 그런 말이나 태도는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
어떤 누구도 죽음을 받아들이라 환자에게 강요할 수 없다. 행여 불치병 판정을 받은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받아들이면 받아들이는 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자체로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놔두면 된다. 전자든 후자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굳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현실을 직시해라’,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잘 보내라’, ‘마지막으로 뭘 하고 싶냐’ 이런 질문 따위는 건방진 태도이다. 자신이 뭐라도 된양 던지는 막말이다. 이런 태도는 절대적으로 지양해야 한다.
만약 죽음을 앞둔 희망의 여지가 없는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해 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 된다. 삶이 계속 유지될 것처럼 미래에 대해 말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함께 고민해주면 된다. 그리고 병이 다 나아서 퇴원 후에 해야 할 일들도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함께 대화하면 된다. 굳이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정신 차려라’ 등 이런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병에 대해 환자는 충분히 의사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것이다. 굳이 타인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죽음을 받아 들이던 받아 들이지 않던 그의 몫이다.
죽음 앞에선 이에게 할 말이 없다면 굳이 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어줍잖게 상대를 위한답시고 서슴없이 세치 칼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이게 어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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