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혁 Nov 12. 2019

아내의 자서전 출간

떠나는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일전에 아내가 죽기 전 버킷리스트 1위로 써놓은 것은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출간하는 일은 마라톤만큼이나 장시간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강제성 없이 자발적으로 책쓰기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막연한 뜬구름 같기도 했다. 그런데 기왕 할거라면 더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내가 도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결심이 서자 아내는 병원 침대에 누워 바로 책쓰기에 돌입했다. 

사실 일반인도 쉽지 않은 일인데 뇌종양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글쓰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염려도 작지 않았다. 일단 아내의 건강이 우선이었고 회복하고 써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마지막을 준비해야 될지도 모르는 현실앞에서 그냥 그녀가 원하는 일을 다 해줘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언어장애가 동반되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도 힘든 상황이있었고 증상이 악화되자 조금씩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서전을 포기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었다.      


하지만 늘 긍정적이던 그녀는 내 말이 통할리 없었고 오히려 걱정하는 나를 위로하고 희망은 버리지 않되 악화되는 병세를 인정하며 몸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으로 의견을 맞췄다.     


그래서 였을까. 

항암치료 중의 집필이었지만 아내의 노력에는 밤낮이 없었다. 

입원 중에는 나와 전화통화하며 어떤 내용을 책에 담을지 고민했고, 작은 소제목에 들어갈 내용에 대해 밤늦게까지 대화하는 일도 잦아졌다.      


[우리 그때 기억나?]     


수화기 너머의 그녀의 목소리는 연애시절의 진희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보육문제로 나는 집에서 아내는 병실에서 우리는 그때의 연애시절로 잠시나마 돌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저 좋았다.      


우리 처음 만났던 날. 같이 취미로 댄스활동을 하던 기억. 프로포즈를 하는 날 등 그녀와 추억팔이를 하느라 밤 늦게 잠들기 일쑤였다. 몸은 피곤한데 마음이 다시 젊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내가 혹시.. 잘못되더라도.. 나 빨리 잊어. 알았지?]     


“그래. 그럴게”     


말도 안되는 말은 말도 안되게 받아쳐야 직성이 풀렸다.      


[진짜야]     


내 말뜻을 모를리 없는 그녀였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라고 말하냐 그럼. 왜 잘못 될거라는 생각만 해! 힘 빠지게”     


[..미안해..]     


울컥한 내가 신경쓰였는지 우선 사과하고 보는 아내였다. 사실 사과는 내가 해야하는 건데 쓸데없이 욱하는 성질에 그만.      


“나 알잖아. 알아서 잘할게. 그래도 그런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어.”     


[응.. 그런데 나 너무 힘들어. 살고 싶어 여보.]     


수화기 너머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더 들었지만 가슴이 먹먹해서 차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옆에선 토끼 같은 아이들이 잠들어있었고 내일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그녀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 안아 줄 수 없는 무능력함에 굴복해야 했다.     


‘진희야. 나 참 바보같다. 그렇지’     


마음이 닳고 닳아 헤져서 아픈데 더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한참을 울다가 수화기를 끄지 못했던 걸 기억했는지 아무 말없이 통화종료가 되었다.      

그 날 밤 나는 긴긴밤을 아이들 얼굴을 들여다 본 기억이 난다.      

 

우리의 노력으로 아내의 자서전이 출간되었고 그것이 그녀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20대에 접어들어 어떤 계기로 현재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자신이 즐겼던 취미생활을 회상하고, 어떤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었으며, 남편은 어떻게 만나 결혼했는지, 그리고 뇌종양 발병과 아이들의 양육까지 자신의 삶 전체를 되짚어 보았다. 집필과정뿐만 아니라 원고편집과정에서도 수차례 퇴고의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삶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은 나에게도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의 책은 2018년 11월 출간되었다. 아내는 자신이 쓴 책을 전달받았을 때 감정에 복받쳐 책을 안고 한참 동안을 울었다. 추후 이 책은 방송국 작가의 눈에 띄어 방송제작 제안을 받는 계기가 된다. 책을 가만히 읽어보면 뇌종양을 투병 중인 환자가 쓴 책이지만 막연히 우울하지 않고 재미있단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책 제목은 ‘두 아이 엄마의 뇌종양 투병기《지금 살아있으니까 괜찮아》’다. 책은 뇌종양 투병생활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울고 슬퍼한다고 달라질 상황은 하나도 없으니 현재를 받아들이되 희망을 잃지 않고 오늘 하루 살아있음에 감사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가 거듭되면 사람들 머릿속에 아내의 기억은 조금씩 잊혀져 갈 것이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도 엄마에 대한 추억이 조금씩 희미해져 갈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남긴 책 한 권은 영원히 남아 아이들이 성인을 지나 노년이 되어도 아이들 가슴에 살아 숨 쉴 것이라 믿기에 그때의 선택이 참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 03화 가족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