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한 글

요즘 나의 관심사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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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에 응시했다. 사실 직장에서 약간의 이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진작에 응시를 했었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라고 쓰고 핑계라고 읽는다)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도전이 늦어지게 되었다. 가산점 인정을 위해 획득해야 하는 등급은 심화 3급 이상. 심화영역 시험에서 60점 이상을 득점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 것이다.


사실 부끄럽게도 나는 소위 이과생이었던지라 중학교 때 공통으로 배웠던 국사 교과 이후로 고등학교에서는 깊이 국사 공부를 한 적이 없다. 대학교에서도 교양과목으로 1학년때 조금 스쳐 지나가듯 수강했던 기억. 그렇다고 국사를 싫어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초등학생시절, 그때는 오히려 나이에 맞지 않게 안방 책꽂이에 꽂혀 있던 왕 두꺼운 고려 왕조 실록과 조선 왕조 실록을 꺼내어 거실 소파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읽어나가던 어린이였다. 가족들과 함께 모여 앉아 사극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고 유행하던 역사 만화책도 빠짐없이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입시와 수능이라는 커다란 산맥을 넘으며 너무나 철저히 이과생으로써의 입시를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그랬던 어린 시절이 무색하게 휘발되어 버린 나의 역사적 지식과 인프라. 허무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 가는 이제 아예 도전도 못하겠다 싶어 일단 시험 신청을 했다. 거의 제로베이스에 가까운 상태에서 호기롭게 신청은 했다. 다시 취소를 해야 하나 번뇌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뭐라는 생각을 꾸역꾸역 주입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보다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시험일까지의 기간 동안에 해외여행도 다녀와야 했고 생각보다 나 자신의 무지함에 새삼 놀라며 일단은 닥치는 대로 외우고 기출문제를 풀어나갔다. 유튜브에 있는 한능검 강사님들의 얼굴이 하루 중 가장 많이 본 얼굴이라 내적 친밀감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틈틈이 휴대폰 앱을 켜서 기출문제를 풀고, 도저히 외워지지 않는 내용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나만의 암기법으로 외워가면서. 그리고 함께 시험을 신청하고 공부하게 된 친구와 매일매일 역사 공부 이야기를 주고받고, 함께 울고 웃고 의지하면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드디어 시험 당일. 제발 60점만 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으로 시험에 응시했다. 노력에 간절함이 더해진 덕분에 나와 친구 모두 3급인 60점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아 1급으로 합격을 했다. 공부할 때에는 제발 어서 시험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시험을 치고 나니 후련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애틋함이 밀려왔다. 비록 공부의 목적은 시험이었으나, 그 간절함 덕분에 몰입할 수 있었고 스스로에게 약간의 약점같이 느껴졌던 역사적 지식에 대한 구멍이 채워진 기분이 들어 뿌듯하기도 했다.


서사가 길었으나, 이로 인해 요즈음 나의 관심사는 역사이다. 매일 홀린 듯이 빠져들어 벌거벗은 한국사를 정주행 하고 유튜브에서는 이제 볼 필요도 없어졌지만 한국사 기출 강의를 괜히 틀어보기도 한다.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의 쓸모를 읽고 마음이 웅장해지기도 하고. 최근 종영한 원경 드라마를 보면서는 눈물을 콸콸 쏟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한 국사 지식들이 허무하도록 하루하루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 아깝고 아쉬운 마음에 휴대폰의 한국사 기출문제 앱을 켜서 풀어보기도 한다. 본디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고, 알게 된 후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은 법이니.

지금의 역사 공부와 동기화된 일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피어오른 불꽃이 은은하게나마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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