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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친구'라는 단어는 나에게 두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새로운'과 '친구'라는 단어의 합성어기 때문이다.
먼저 현재의 나는 '새로운' 친구가 거의 없다.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의식적으로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어린시절의 나는 새로 친구를 만드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아니 내가 노력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주에 속하는 일이었다.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철저하게 고민하고 연구하여 노력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친구 비슷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해 주의깊게 관찰하고, 관심사와 특징을 파악하여 그 사람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면 어느정도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그 정도의 노력을 쏟고 싶지 않을 정도인 상대에게는 예외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수치로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친구의 수라고 착각했던 어린 시절이었기에 그시절의 나에게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일은 꽤나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치를 할 것도 아니고 연예인이 되어서 인기를 먹고 사는 업을 가지고 살아갈 것도 아닌데 그렇게 나의 에너지를 쏟아가며 친구 관계의 인프라를 확장시켜 갈 필요가 없음을. 어느순간의 나는 깨닫게 된다. 그 후로 인생의 큰 과업들과 풍파를 거쳐오며 자연스럽게 '친구'라고 명명했던 관계들은 어디론가 하나 둘 사라져갔다. 실은 인간관계에서의 에너지소모가 극도로 큰 나로써는 애초에 극도의 무리를 하면서 보냈던 유년기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태학적으로(?!) 에너지의 총량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내가 가진 에너지의 총량으로 감당할 수 있는 관계들, 친구들만 곁에 남았다. 내가 많이 애쓰지 않아도, 소진되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내가 그 친구들 곁에서 기운을 충전받는 사람들.
자연히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일은 이제 지금의 나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새로운 인간관계는 끊임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가깝고 견고한 관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내 곁에 남은 작고 소중한 친구들에게 더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다.
두번째로 '친구'의 의미인데 친구의 범주가 꼭 사람과 인간관계의 영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내가 거칠게 다루기는 하지만 나의 발과 대형 휴대폰 충전기이자 음악감상실이 되어주는 나의 차도 나의 절친한 친구이며 자고 일어나면 어느 새 1센티는 자라나 있는 듯한 내 방의 아이비 화분도 나의 친구이다. 여행지에서 여행자가 아니면 절대 구입하지 않을 기념품 마그넷도 내 새로운 친구가 된다. 그렇게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꺼이 나의 벗이 되어주는 모든 것들. 그들을 나는 서슴없이 친구라고 부른다.
최근 내가 빠져있는 친구는 나의 겨울철 생존을 책임지고 있는 히트텍과 핫팩. 최근의 밥친구는 모던패밀리 시리즈와 벌거벗은 한국사 시리즈. 매일 혹사시켜서 안쓰러운 친구는 아이패드. 이 시즌만 되면 소환하게 되는 이맘 때의 플레이리스트. 모두 나의 삶에서 나와 함께 해 주는 친구들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새로이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또 끊임없이 새로운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