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한 글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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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낯뜨겁기는 하지만 나는 말을 예쁘게 한다는 말을 꽤 자주 들어온 편이다.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할 때 상대방에게 꽤 주의를 기울이는 편"의 의미라면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말을 하기 전에 최대한 다듬고 고른 다음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조금 슬프기도 하고 반성하는 부분이기는 한데, 가까운 관계일수록 필터링의 과정과 시간이 짧아지는 편이고 그 반대일수록 마이크로 나노미터 급의 필터를 거치게 된다.


내가 이렇게 말을 조심스럽게 하게 된 연유로는 아마 내가 말 한마디에도 크게 반응하고 상처받는 사람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상대방은 아무 생각 없이 건넨 말 한마디, 크게 의식하지 않고 고른 단어.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을 거르지 않은 채 툭 던져버리는 감정 범벅의 문장들. 그런 것들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왜 하필 그런 표현을 썼을까. 그 단어를 말해야만 했을까. 그런 표정과 눈빛으로 말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말이라는 것은 나 자신의 표현 방식 중 하나이긴 하지만, 청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나 하나만의 행위가 아닌 것인데.


나의 말을 듣게 되는 상대방에게는 최대한 내가 느껴왔던, 그런 종류의 감정과 번뇌들을 겪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이왕이면 돈이 드는 일도 아닌데 최대한 받았을 때 기분 좋은 모양으로. 내 마음 속 선반에 올려진 단어들 중 그사람에게 어울리고 좋아할 만한 것으로. 지금 현재 상대방의 상황에서 꼭 필요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건네어 주고 싶은 마음. 그렇게 내가 마음의 품을 들인 만큼 상대방이 공들인 나의 마음을 알아차려 줄 때 괜히 착한 일이라도 한 것 처럼 뿌듯해지는 마음은 나에게 돌아와 차곡차곡 쌓여가는 마일리지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이렇게 당신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있으니 그대 역시 나에게 이만큼의 예의를 갖추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숨어있지 않았을까. 목욕재계를 하고 정갈한 옷차림으로 고개숙여 인사를 하는 사람에게, 퉤 하고 침을 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별 생각 없이 느슨해진 마음으로 마주했다가도 깍듯한 상대방의 모습에 뒤늦게 어색한 미소라도 짓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상대방의 무례를 미리 방어하기 위한 방패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좋다. 말이라도 예쁘게 하는 사람 모두 포함이다. (후자를 선호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무튼 '말이라도'에 초점을 둔다는 의미이다.)

행실이 엉망인데다 말까지 시궁창처럼 한다면 정말이지 구제불능이 아니겠는가.

한때 유행했던 '다정도 지능이다'라는 말처럼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은 최소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갖출 수 있을 만큼의 교양과 배려는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이타심이, 상대방을 향하는 말 속에 담겨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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