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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고 자란 곳은 눈만 뜨면 애쓰지 않아도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섬마을 소녀였다는 것은 아니다. 해양도시 부산에서도 바다와 아주 인접한 동네였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의지와 상관 없이 내 인생의 바탕화면에 늘 바다가 차지하고 있는 삶.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에는 바닷가를 드라이브하며 '우와~ 바다다!!' 하고 감탄하는 드라마 속 장면을 보며 진심어린 갸우뚱을 시전하기도 했다. 매일 보는 바다를 보면서 왜 새삼스레 놀라는 걸까? 하고.
실상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일상을 사는 일은 그렇게 감탄스러울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특히 여름이 그랬다.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고 했던가. 바다의 푸르름은 물론 멋지고 아름다웠지만 그 푸르고 거대한 바다에서 증발된 수증기들은 어마어마한 습기와 안개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여름철마다 엄마는 무시무시한 습기에 공격당한 옷장 속의 곰팡이들에 맞서 싸우느라 바빴다. 아무리 드라이 크리닝을 하고 비닐을 덮어서 보관을 해도 약올리듯 동그랗고 보송보송한 모양으로 생겨나는 곰팡이들. 태풍시즌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지역 뉴스에서는 어디에서 물난리가 나고 차도가 물에 잠기고. 위험하거나 위협적인 뉴스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다음은 안개의 공격. 마치 소독차 트럭이라도 지나간 직후인 것 처럼 문자그대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의 습격은 여름철 내내 이어졌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의 입지가 그러하듯)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여름철만 되면 학교 주변이 온통 안개로 뒤덮여 깊은 골짜기에서 템플 스테이를 하는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게다가 안개와 습기는 앞머리 한 올의 미세한 말림에도 예민해지는 여고생의 머릿결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예민한 여고생에게는 가히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바다가 아름다운 도시 부산, 축제도 참 많았다. 바다축제, 불꽃축제 등등. 축제 시즌만 되면 다른 도시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로 인해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이 절실해지기도 했다. 발디딜 틈도 없이 북적이는 거리, 한바탕 인파가 떠나간 뒤의 흔적들. 그렇게 바다는 멋지고 아름다웠지만, 일상을 불편하게도 출렁이게도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나고 자란 바다의 도시를 떠나 정반대의 분지에서 생활을 하게 되고. 다시 부산에 돌아온 후에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며 살아가다 보니 이제는 알겠다. 내가 나고 자란 세월 속에 늘 있었던 바다의 존재감을. 그렇다고 볼 때마다 감탄하고 뭉클해지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늘 넓고 깊은 모습으로 내 삶 속에 공기처럼 존재했었기에 그 곳에 던져버리고 뱉어낼 수 있었던 내 마음의 보금자리였음을. 특별한 날에 찾는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는 아니지만, 그저 입안 가득 왕 하고 한 술 뜨는 것만으로 마음이 느슨해지는 된장찌개 같은 존재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