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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나의 포지션은 막내이다. 1남 1녀 중 둘째이니, 막내라는 표현은 과한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부모님과 오빠 나로 이루어진 네 가족 중에서 나는 가장 어린 사람이었으니까 틀림이 없기는 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나는 마치 막내의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 것처럼 내가 속한 거의 모든 집단에서마다 가장 어린 축에 속하게 된다. 나는 2월 태생이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초등학교 조기입학으로 8살인 언니 오빠들 사이에 섞인 7살 막내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냥 2월생도 아닌 2월의 끝자락에 태어났으니 3월생인 친구들과는 거의 생일이 1년 가까이 차이가 났다.
그런 연유로 늘 암묵적 막내의 위치에서 12년 간의 학창시절을 보내고 난 후로도 대학교, 직장에서조차 딱히 내가 선배나 연장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해내어야 할 순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 부터인가 조금씩 나의 막내 입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그동안 운명의 장난처럼 막내의 포지션을 겨우 유지해 올 수 있었다 한들,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훌쩍 먹어버린 물리적인 내 나이는 피해갈 수 없는 지점이 도래한 것이었다.
평생 '언니', '누나'. '선배'라는 호칭을 들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늘 가장 어린 사람, 경험이 적은 사람의 위치에서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그것을 마치 호패처럼 들이밀며 적당히 숨어왔던 나날들. 누군가에게 어떤 호칭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 호칭의 무게만큼의 책임감과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그 호칭으로 불리었을때,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기 위해서. 나아가 내 자신에게 그 호칭을 붙여 소리내어 말 해 보더라도,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여전히 누군가의 딸, 동생, 친구, 언니, 선배, 선생님. 나라는 사람에게 입혀진 수많은 호칭의 옷들을 껴입고 살아가고 있지만. 모든 옷들이 내 몸에 꼭 맞아 편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물론 어떻게든 잘 소화해내고 싶은 마음에 아등바등 하고 있지만, 그 모든 옷들을 벗어던지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의 내 자신이 홀가분함은 어쩔수가없다.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불리는 것도,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지만 누군가의 무엇으로 불리기 이전에 그저 나 자신이고 싶은 마음.
그리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호칭은,
그저 나의 이름 세 글자.
나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