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한 글

일과 감정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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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의 균형이 어느 쪽으로 더 기우는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지극히 감성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 때는 이런 나의 성향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어느정도 덜어내고 감출수는 있지만, 마치 격언같은 문장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라고. 머리로는 세상 냉철하고 쿨하고 이성과 논리로 움직이는 사람을 꿈꾸지만 이미 눈가는 시큰거리고 가슴 속에 돌덩이 하나가 들어앉은 것만 같고 오만가지 생각들의 아우성에 잠 못이루는 사람.


그런 내가 남녀노소를 불문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감정을 받아내고 읽어내야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으니. 매일매일 한도 초과로 투입되는 감정들의 공격에 내 감정 지켜낼 공간 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굳이 내 안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데도 밀어낼 틈도 없이 이 사람의 감정과 저 사람의 감정들이 밀어닥치듯 쏟아졌다. 더 어렸던 그 시절의 나는 그래도 꽤 나름의 직업의식으로 버텨내려 노력했던 것 같다. 어떻게든 그 사람들의 감정들을 공감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내가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억지로 꾸역 꾸역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 해 보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그런 마음이었겠구나. 그렇게 공감과 이해의 필터링을 한 후에야 '그래서 그런 것이니 내가 이해해 보자.' 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들. 결코 틀리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들은 너무나 큰 에너지 소모를 요하는 것이었다.


점점 내 안의 감정 정화 작업으로 인해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내가 누군가들의 감정을 반드시 공감하고 이해해야만 하는 걸까. 내 마음의 에너지 정량보다 훨씬 더 많은 품을 들여 가동하고 있는 상태로, 나는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아찔했다. 나.. 이러다 진짜 어떻게 되는거 아니야...?


그 순간부터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되, 내가 해낼 수 있는 총량 이상으로는 애쓰지 않을 것. 공감을 잘 하고 누군가의 감정을 잘 읽어내는 것은 분명히 내가 하는 일에서의 큰 장점이지만, 그 장점을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만 활용할 것. 공감은 하되 감정이입은 하지 않을 것. 물리적으로 직장에서 벗어난 순간부터는 의식적으로 직장에서의 감정적인 일들에 대한 사고는 완전히 정지시킬 것.


그래서, 지금은 아주 적절하게 감정의 소모를 조절하는 쿨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

첫 단락에서 언급했듯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변화는 있다고 생각한다. 감당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 결국은 내 자신이 괴로워지더라도 멈추지 못했던 시절에 비해, 이제는 아, 나도 모르겠다. 라고 마음먹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읽고,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내 마음, 내 감정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도 너무 힘들어' 라고.


일에 감정을 섞지 않을 수 없지만, 감정으로 인해 침몰되지는 않으리라.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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