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늘 나에겐 커다란 산이었다. 봄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익숙했던 것들과의 이별. 다시 목구멍까지 차오른 긴장을 흠흠, 꾸욱 삼켜가며 언제쯤 이 긴장과 모든 것과의 낯가림이 사그라드는 시간이 올까.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날들.
무엇이라도 하나 조금 천천히 바뀌어주면 좋을텐데, 겨우내 꽁꽁 웅크렸던 세상의 풍경들 까지도 마치 다른 세상처럼 격변하는 봄. 이래 저래 변화하는 모든 것들에 시차적응이 더딘 나에게는 매일이 울렁임에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누구 하나 나를 울리는 사람은 없는데, 자꾸만 뜬금없이 눈가가 뜨끈해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딱히 슬프거나 서러워서는 아닌데, 그냥 모든 것들이 낯설어서. 나를 둘러 싼 얇은 막 너머로 세상은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이 긴 긴 시기가 지나고 나면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봄 멀미를 겪게 하는 여러 요소들 중 하나 정도는 소거될테니 증상이라도 조금 경미해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나조차도 몰랐지. 내가 그렇게 일평생 3월 울렁증을 겪어 온 학교에서 또 다시 매년 그 울렁증을 겪게 되는 사회인이 될 줄이야. 그래도 학생이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는 조금 낫지 않을까 라는 최대한의 긍정회로를 돌려보았지만 아니 왠걸. 위기 상황에서마다 어리고 철 없음을 내세우며 얼렁뚱땅 버틸 수 있었던 그 시기의 특권 같은건 없었다. 나는 어른이었고, 사회인이었고 나 한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기까지 해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음을.
웃기고 슬픈 이야기지만, 늘 2월 중순 즈음부터 나는 몸과 마음의 몸살을 앓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2월 중순부터 3월까지 한달여가 넘는 시간 내내. 모든 것들이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변하고 또 새로운 것들을 내 손으로 만들고 맞이해야 하는 봄의 문을 열고 맞이하는 그 시간들은 어른이 된 후에도 나에게는 여전히 버텨내야 할 시기이다. 하루 하루가 벅차고 고된 나날들. 체감상 이 시기의 하루는 마치 한 달처럼 느껴지는.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
익숙하고 편안하다고 느껴지는 그 시기가 올 때까지, 봄의 나날들. 하루 하루 봄의 울렁임을 참아내고 버티며 보내는 이 시간들을 버텨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은 이 시간들도 언젠가는 언젠가의 언젠가가 되고,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것. 그 나날들을 너무 깊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살랑이는 봄의 풍경들과 생기를 머금고 변해가는 모습들을 보며 고단함을 잊어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올해도 역시 고된 봄의 산맥을 올라 이제는 산 중턱을 넘어 조금씩 내리막길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봄의 산맥을 겨우 넘고 나면,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여러 고비들이 언제 어디선가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리라. 그렇다면 뭐, 이미 한 고비 넘긴 자의 여유로움으로 맞이해야지. 너, 내가 차근히 정복 해 주겠어 하고.
벌써 벚꽃이 다 피었다.
봄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