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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를 아시는가. 나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 시절 최소한의 사회 생활을 위해서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하나쯤은 필수였음을. 요즘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기프티콘을 인사처럼 주고 받듯, 그시절은 꽤나 귀엽고 낭만적인 도토리를 주고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싸이월드에는 요즈음의 블로그나 인스타그램같은 SNS와는 조금 다른점이 있었다. 바로 '일촌'이라는 얼핏 가족적 유대감이 느껴지는 상호적 관계였다. 어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일방향적으로 팔로우 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일촌'으로 맺어져야 하는 쌍방향적인 관계. 게다가 그 관계를 맺기까지의 과정에도 커다란 과제가 있었으니. 바로 '일촌명'을 짓는 일이었다.
'일촌 신청'을 하려면 서로에게 '일촌명'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원영이가 은우에게 일촌 신청을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일촌신청을 보낼 때 '럭키 빅키 원영' -> '조각 미남 은우' 라는 형식으로 일촌명을 기입하여 상대방에게 일촌 신청을 보낸 후, 상대방이 일촌 신청을 수락하면 그제서야 그 둘은 일촌의 관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일촌 간의 일촌명을 찬찬히 살펴보면 상대방과 나의 관계에 대한 온도와 밀도차를 느낄 수 있다. '##과 동기' , '0# 선배' 이렇게 굳이 일촌명으로 수식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일촌명들과, 상대방과 나만 아는 특별한 추억 또는 특징으로 탄생한 일촌명들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수없이 나를 스쳐지나갔던 일촌명들 중에서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일촌명이 하나 있다. 같은 과도 아니었고, 같은 학번도 아니었지만 우연히 친한 언니를 따라 가톨릭 신자도 아니면서 가톨릭 동아리에 들락거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당시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막막하고 고되고 불안하던 임고생 시절이었으며 그 곳의 사람들은 나의 나약한 마음을 무조건적으로 따듯하게 보듬어 주었다. 그 후배 여학생은 그 동아리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본 것도 아니고 그저 동아리 활동이 있을 때 몇 번 친한 언니와 함께 밥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던 사이. 그러다 그 시절 문화가 그러했듯 살가웠던 동생은 나에게 '언니! 싸이월드 일촌 신청 할게요. 받아주세요!'라고 말하며 총총 사라졌다.
그 날 밤, 싸이월드 로그인을 하니 '일촌 신청이 왔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조그만 팝업창이 떠올랐다.
상대방이 보내오는 일촌 신청 메시지를 마주할 때마다 반가움과 동시에 '일촌명'에 대한 궁금함이 차오른다.
- '봄날의 햇살' 희윤언니 -
그 동생이 보내 온 일촌 신청 메시지에 담긴, 나의 일촌명이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인 우영우가 자신의 친구 최수연에게 '넌 봄날의 햇살 같아.'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최수연이 듣고 싶어했던 최강동안이나 최고미녀의 별멍은 아니었지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놀리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감싸주는. 자신을 위해 물병을 열어주고 좋아하는 메뉴가 나오면 알려주겠다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봄날의 햇살같다 말해주는 친구 우영우의 대답에 최수연의 눈가가 빨개졌던 장면을 보았을 때. 그 순간에도 나의 오래 전 싸이월드 일촌명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이 지나, 온 세상이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차기 시작하는 봄날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햇살이라니.
그보다 더 나를 좋은 사람으로,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아 주는 표현이 있을까.
아마 그 고운 마음이야 말로 봄날의 햇살같은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