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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서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아마 과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닐지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관성의 법칙이란 외부 힘이 작용하지 않을 때 물체가 정지상태를 유지하거나 등속 직선 운동을 계속하려는 성질이다. 즉 쉽게 말해 외부에서 큰 자극을 주지 않는 이상, 지금 현재의 상태를 쭉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이 '관성의 법칙'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당장 내 삶 속의 여러 장면들 속에서도 관성의 법칙은 늘 작용하고 있다. 늘 익숙한 경로를 지나 출근을 하고, 비슷한 풍경을 보며 익숙한 식당과 카페를 들르고.
매번 마음에 쏙 들어서 구입했던 옷들이 모여있는 옷장 문을 열어보면 정작 비슷한 색과 비슷한 디자인의 옷들이 포개어져 걸려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첨부하여 수정과 개혁의 의지가 담긴 계획서를 작성해볼까 싶다가도, 결국은 작년의 동일한 제목의 계획서에서 숫자와 문장 몇 개 정도만 수정하여 다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익숙한 것은 편안하다. 나를 불안하게 하지도 않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나 결과에 대해 큰 걱정을 안겨주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설령 익숙함 속에서 발생하는 자잘한 예외사항들이 발생하더라도, 왠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주 조금만 '익숙함의 노선'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크게 당황한다. 깜빡 잠들어버린 버스 안에서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쳤음을 깨달았을 때. 내가 늘 주문하던 메뉴가 실수로 다른 메뉴로 잘못 나왔을 때.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들로 가득한 장소에 가게 되었을 때. 나 혼자 다른 나라 언어를 쓰는, 다른 생김새를 지닌 사람으로 어딘가에 똑 떨어져 버렸을 때. 평소에는 마치 자동화 시스템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보고, 듣고 반응했던 모든 것들이 곧장 수동 제어 시스템으로 변환된다. 스스로 현재의 상황을 진단하고, 판단하고, 반응해야 하는. 나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익숙함이 주는 수많은 장점들이 있다. 그 익숙함의 장점들은 모두 소중하고, 우리의 삶을 덜 피곤하게 살아가도록. 고단한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익숙함을 떠나는 연습도 필요하다. 그 연습은 의식적으로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익숙한 것에서 한 발짝 벗어나는 순간, 침을 꼴깍 삼키고 심장이 쿵, 서늘해지기도 한다. 등줄기에 땀이 한 줄이 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이 우리의 사고가 확장되는 순간이다. 오감의 날이 날카로워지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쑥 자라난다.
익숙함을 떠나는 연습이 꼭 거창하거나 비장할 필요는 없다. 늘 다니던 길에서 다른 길로 접어들어 보는 것. 평소라면 입도 대지 않을 음식을 한번 먹어 보는 것. 한번도 가 보지 못했던 장소에 용기를 내어 한번 발걸음 해 보는 것. 한번도 지어보지 않았던 표정을 지어 보는 것. 이 모두가 익숙함을 떠나보는 연습이 될 수 있다. 아주 작은 시도가 주는 경험의 확장은 분명 불편함과 이질감 이상의 큰 의미가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