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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작가의 일화가 꼭 아니더라도 꾸준히 매일 부지런히 쓰는 것의 중요성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매일 매일 조금이라도 쓰다보면 그 중 언젠가는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흡족한 글이나 문장, 표현들이 불쑥 나타날 때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떻게 끄적여보아도 썩 마음에 들지 않고 한심하게 느껴지는 문장들만 가득한 날도 있다. 슬픈 것은 후자의 경우가 더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미술학원에서 수채화를 그리던 때였다. 수채화의 특성상 자꾸만 욕심에 덧대어 칠할수록 수채화 특유의 투명한 느낌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화가가 아닌 이상 여러번 손을 댈 수 밖에 없는데 자꾸 더해지는 붓질마다 한숨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럴 땐 차라리 그리던 그림을 멈추어버렸다. 며칠 뒤에 다시 꺼내어 마저 완성을 한 적도 있고, 아예 새로운 스케치를 하여 다른 그림을 시작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정말로 신기한 것은, 그렇게 조금의 틈을 두고 한 숨 고르고 난 뒤에 그린 나의 그림은 한결 편안하고 내 마음에 흡족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특별히 나에게 괄목할만한 성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잠시 그 하나에만 집중하고 몰두하여 마음을 괴롭히던 그 순간에서 벗어났을 뿐. 한발짝 걸어나와 멈추는 시간동안 내 마음의 환기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어떻게든 그럴듯한 문장과 글을 써보려 설계도를 짜고 한 스텝 뒤를 예상하고 구조화된 문장을 구상하는 것보다 사실은 그냥 마음을 온전히 꾸미지 않고 담아낸 문장에 가슴이 반응한다. 가만히 무념 무상의 상태로 있다가 나도 모르게 수첩 귀퉁이에 끄적인 문장 하나에 진심이 담긴다.
그렇게 가끔씩은 나에게 다가올 문장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애써 찾아가지 않아도, 나에게 다가와줄 그런 문장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