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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은 어떤 일을 반드시 행하겠다는 굳건한 마음가짐이다. 무언가를 '반드시 행하겠다'는 마음은 사실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니다. 일단 마음 속에 반드시 행하고 싶은 '어떤 일'이 있어야 하며, 반드시 '행하겠다'는 의지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하루 허덕이며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반드시 행하겠다는 의지를 다질 여력이 주어지기란 쉽지 않다. 자발적 의지로 해내거나 하고 싶은 일들은 타의에 의해, 혹은 의무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들의 우선순위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언젠가 엄청난 무기력에 빠져 헤어나오기조차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그 엄청난 무기력의 시기에는 무언가를 해보겠다던지, 해볼까 라는 의욕이 눈꼽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좀 더 나아지기 위해 이런 저런 시도를 해 보는 것도, 힘든 시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 보는 것도 눈꼽만큼의 의욕이라는 것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무기력의 시기에는 정말이지 눈을 뜨고, 손을 까딱하고 출근을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내가 살아있는 상태로 행하는 모든 일들이 그저 누군가가 조작 해 놓은 AUTO 기능에 의해 그저 작동하며 살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무기력의 동굴과 같은 시기를 겪어내고 나면, 늘 깨닫게 된다.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의지, 그리고 다짐은 생에 어느 정도 꼭 필요한 일이겠구나 하고. 그 의지와 다짐의 미약한 불씨가, 시들어가는 내 생의 어느 순간들마다 내 인생을 다시 살만한 것으로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줄 수 있겠노라고.
더불어 그렇게 내 생을 살만한 것으로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다짐들은 그리 거창하고 거룩한 것이 아닐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존경하는 피천득 선생님의 글 중 가장 아끼는 작품 중에서 <신춘>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작품에서 피천득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금연, 금주, 운동하기 등 가지각색의 결심을 하지만 실천하는 것은 언제나 큰 의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거울을 들여다 볼 때나, 사람을 바라볼 때나 늘 웃는 낯을 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아마 가능할 것이다. 』
실천하기 어려운 다짐은 또 다른 좌절과 무기력을 불러올 뿐이다. 그러므로 되도록이면 큰 힘들이지 않고도 실천할 수 있는 다짐의 씨앗들을 여기 저기 뿌려 놓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뿌려놓은 씨앗들이 언젠가 고개를 돌려보았을 때 귀여운 새싹을 빼꼼 내밀며 내 마음을 간지럽힐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