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한 글

왜 하필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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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이라는 말을 소리내어 말하는 순간은 이미 어떤 일이 일어난 후 이다. 다시 돌이킬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일. 왜 하필, 이라는 세 글자 뒤에는 (그랬을까) 또는 (그래야 했을까) 가 생략되어 있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신은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이냐고. 나는 잠시 답을 망설였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전혀 후회스러운 순간이 없었다거나,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서는 아니다. 결코. 하지만 후회하는 마음에 비해, 체념과 받아들임의 속도가 아주 조금 더 빠른 덕분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릇이 큰 사람이라서, 모든 일은 그리 되어야만 할 것이었다 믿는 운명론자라서가 아니다. 그저 빨리 받아들이고, 잊고, 괴로워하기 싫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은 자구책에 가깝다.

왜 하필 그랬을까의 웅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기 보다는, 그저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흙웅덩이를 지나다 흙탕물이 튄 것일 뿐이라고. 걷다보면 축축한 옷자락은 마를 것이고, 어차피 늘 흙먼지 하나 묻지 않은 채로 살아갈 수는 없는 거라고. 좀 쿨한 척 해보는 그런 마음을 지니고자 한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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