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는 밑도 끝도 없는 대학생에 대한 몇가지 환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열심히 대학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면 성실한 청춘을 사는 젊은이의 이미지였다. 주경야독 공부하여 성적 장학금을 놓치지 않고, 겨드랑이에는 전공 서적을 잔뜩 끼고서 아르바이트 스케쥴을 위해 달려가는 그런 장면. 전적으로 광고와 드라마 등 미디어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여튼 그리하여 나는 자연히 대학생의 해브 투 두 리스트 처럼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 보아야 하지 않겠어? 라는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환상과 일치하지 않는 법. 막상 대학생활은 그렇게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고 잠을 못자면서도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특수 목적 대학에 가까웠던 학교 특성상 수업은 고등학교의 연장선처럼 빡빡했다. 거기에 수업 과제 조모임 시험… 대체 내가 미디어에서 보아왔던 그 대학생들은 어떻게 대학생활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몇개씩이나 해내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냈던 걸까. 나의 나약함 탓인지, 내가 품었던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이었던건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중, 드디어 나는 인생 과업처럼 느껴지던 아르바이트에 도전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는 내가 태어나 단 한번도 해 본적 없는 분야의 일들을 해낼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가보지 않은 길로 걸어가 월급 만큼의 값어치의 일을 해내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몫을 해내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 몫을 해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중압감인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사이트 페이지 하나하나 읽고 또 넘어가고를 반복하다, 결국 홈페이지 창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했을까 -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 내가 제일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일. 그리고 비교적 제일 익숙한 일. 이과 고등학생 과외를 시작했다. 과외 첫 날, 마치 신입사원 면접이라도 보러 가는 것처럼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그 날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아, 돈 버는 일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냉혹한 현실 속에서 밥벌이를 하는 것은 전장을 향하는 마음으로 해내야 하는 것이겠구나, 하고.
겸업을 할 수 없는 직업을 가져버린 탓에 퇴직을 하기 전에는 나에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먼 훗날 호호할머니가 되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부디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나의 이십대의 아르바이트와는 좀 더 다른 마음으로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종종거리고 긴장하며 때로는 눈물짓기도 했던 어린시절의 아르바이트와는 다르게. 돈벌이의 어려움을 느끼기보다는, 내가 무언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뿌듯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