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잠

by 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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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데 나는 단 한번도 깨지 않고 잠을 푹 자 본적이 없다. 아마 있었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신생아 시절이나 아주 어린 시절이 아니었을까.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자다 한 두번씩 뒤척이기도 하고, 살푼 깨었다 다시 잠들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거의 수면 중에 깨어나는 것이 (좋지 않은) 루틴으로 여겨질 정도.


이 증상이 더욱 심해진 것은 아마 대학 입학 후 부터였던 것 같다. 머리만 닿으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먹고 자는 일에 혈기 왕성해야 할 청춘에, 나는 정작 엄청난 스트레스와 신경성 질환을 장착해버렸으니. 인생의 오춘기와 함께 푹 잠들지 못하는 일은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졸업을 앞둔 4학년 시절부터는 고시생의 신분으로 감히 충분히 누워서 잠을 잔다는 것은 스스로 사치라고 생각했다. 책상에 엎드려 기절했다가, 또 죄책감에 눈을 떠서 꾸역꾸역 책을 보는 척 했다가 다시 기절하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수면장애를 획득하게 되었다.


수험생활이 끝나면 더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왠걸. 매일이 눈물바람이던 사회 초년생의 하루하루는 잠을 청하려 눕는 순간부터 베갯잎에 축축히 눈물만 젖어들 뿐이었다. 그렇게 차곡히 수면 부족이 쌓이고 쌓이면 버텨내지 못하는 몸이 결국 고장이 나고. 이런 악순환 속에서 어찌어찌 연명하며 살아가다 보니 이제는 이것조차 익숙해져 버린 일상이 되었다. 역시,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있다는 진리를 나를 통해 깨닫는다.


그렇게 늘 자다 깬 새벽에 시계를 본다. 하루의 일상을 시작하기에는 아직 한참이 남은 시각. 몸은 천근 만근인데, 내 맘 같지 않게 금새 잠의 세계로 빠져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새벽. 하지만 억지로 다시 잠들어야 한다고, 그래야 내일을 버틸 수 있다고 끙끙거려봤자 더 스트레스와 강박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내가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바로 그렇게 자다 깨어 뒤척이다가도, 어찌어찌 다시 잠들게 되었을 때는 그 전의 몇시간의 수면보다 더 깊게 잠이 들 수 있다는 것.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경험적 데이터를 토대로 한 귀납적 결론이 그렇다. 그 전의 불량한 수면이 무색하도록 완전히 기상하기 직전의 그 짧은 잠이 더 밀도있게 느껴진다.


그루잠, 깨었다가 다시 든 잠. 비록 푹 잠들지 못하고 자다 깨었다는 반복하더라도 그루잠의 존재가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이젠 또 다시 깨지 말고 조금이라도 푹 자고 일어나라고. 더 짙고 달콤한 꿈을 이불처럼 덮어주는 토닥임처럼 느껴진다.

나와 같이 무수한 밤, 자다 깨었다를 반복하는 모두에게 포근한 그루잠의 선물이 깃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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