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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May 16. 2023

너의 아기가 걱정돼

12주차 이불 밖은 위험해

집이 가장 안전하긴 한 것 같다. 아침에 자고 있으면 먼저 일어난 남편이 이불도 챙겨주고, 던져놓은 바디 필로우도 다시 안겨준다. 커피 냄새 들어올까봐 방문도 꼭꼭 닫고 커피를 내린다. 세심한 남편 덕분에 아침이 행복하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불안한 게 많아서 유튜브도, 책도 많이 봤다. 특히 좋았던 책은 시카고 대학 보건 경제학 교수가 임신을 한 뒤에 모은 정보를 통계 분석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속지 않는 25가지 방법>, 임신 육아 바이블이라고 하는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 서울대 병원 전종관 교수 <작은 변화에도 걱정이 많아지는 예비 엄마들에게> 정도가 있고, 그 외에도 다른 산부인과 교수들의 책 여러 권과 임신 출산 에세이 같은 걸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의료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남편과 함께 하는 분만인 자연주의 출산을 결정한 뒤로는 동네 산부인과와 자연주의 병원 두 곳에서 의사 선생님들이나 조산사님들의 상담도 받고 있다. 자연주의 출산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서는 하던 운동이나 탱고, 일 모두 지금부터 만삭까지 건강하게 유지하라고 하셨다.


자연주의 출산 원장님이 아니더라도, 유퀴즈를 보고 팬이 된 서울대 병원 전종관 교수님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하시는 듯했다. 특히 부부가 탱고를 추는 건 너무 좋다며 계속 하라며 자출 병원 원장님은 박수까지 쳐 주셨다.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지고 걱정도 좀 줄었다. 주변에 3주차부터 33주차까지 밀롱가에 다녔다는 지인의 경험담도 용기가 되었다. 태아였던 아기는 벌써 엄마보다 키도 크고 건강한 십대 아가씨가 되었다.


요즘에는 임신 사실을 막 알았을 때보다 기분도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 나무늘보처럼 자기만 했던 시기도 지났고, 3~4시간에 한 번씩 졸리지도 않다. 향수 냄새나 커피 냄새에는 아직 민감하긴 하지만, 밖에 나가 산책을 하거나 돌아다닐 때 훨씬 입덧이 덜한 듯싶다. 열흘 내내 냉면만 먹던 시기가 지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전히 원두 볶는 카페에는 못 가고 있지만, 테라스가 있는 야외 카페나 특이한 고구마 카페 같은 곳에서 지금처럼 글을 쓰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임신 상태에 적응을 하면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는 중인 것 같다.


자연주의 출산 병원에서는 요가도 좋기 때문에 초기에도 쭉 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아직은 1.5시간 수업이 체력적으로 무리일 것도 같아서 동네 탄천 산책 정도만 열심히 하고 있다. 임신 사실을 안 뒤에 처음 간 밀롱가에서는 30분도 못 있고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최근에는 좀 괜찮아졌는지 공기가 잘 통하는 밀롱가에서 문 활짝 열어두고, 물 많이 마시면서 음악도 듣고 탱고도 조금씩 추고 있다. 늦게라도 산책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탱고를 추고 오면 기분도, 입덧도 훨씬 좋아지는 것 같다. 사람이 너무 붐비는 곳은 아직 자신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어제도 서울에 나갈 일이 있어서 나간 김에 밀롱가에 들렀다. 일요일엔 보통 밀롱가가 한적하기도 하고, 문을 활짝 열어둬도 문제가 없는 곳이라 남편하고 딱 2시간만 놀다 나오자고 했다. 들어가기 전에 밥도 든든하게 먹고, 우유 아이스크림으로 정신도 깨우고 약간의 낮잠도 잤다.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적당히 잘 놀고 남편과 나오기로 했던 시간이 되어서 나왔다. 나와서 매콤한 주꾸미도 먹고, 삼삼한 미역국도 먹었는데, 나오기 전 밀롱가에서 들었던 한마디가 오늘까지 떠올라서 속상하기도 하고, 신경이 쓰인다.


“너 여기 와 있어도 되는 거야? 그러다 큰일 난다.”


분명 걱정 어린 눈빛이었는데, 어쩐지 저 ‘큰 일’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큰일이라고 하니 스치는 무서운 단어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다’와 ‘큰일’을 풀어보면 ‘너 그렇게 초기에 밀롱가 다니다가 아기가 잘못된다’라는 말로밖에 해석이 안 되어서 기분이 좋지 않다. 임신 중이라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임신 초기 아기에게 혹여라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엄마의 잘못이라기보다 유전자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입장이다.


엄마가 무기력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적당히 신체 활동을 하는 게 좋다고 내가 읽었던 8권의 책에서는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니는 두 곳의 산부인과 선생님들도 산모가 너무 건강하니 전에 하던 것 모두 그대로 해도 된다며 웃으셨다. 워낙 몸이 예민한 편이라 임신 사실을 3주 4일차에 알기도 했고, 걱정도 많지만 그만큼 조심해서 준비하고 있다. 아마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들었다면 지난 두 달 간 밀롱가를 가지 않았던 것처럼 스스로 집에 있었을 테다. 걱정인지 아닌지 하는 이런 말을 외부에서 듣고 오니 어젯밤부터 영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불편하다.


이래서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하는 건지, 몸도 정신도 말짱하고 컨디션도 좋은데 마음이 계속 좋지 않다. 불필요한 걱정으로 당사자의 죄책감을 유발하는 말은 주변에서 삼가 주었으면 좋겠다. 마음 편히 놀면서 행복하게 임신 기간을 보내고 싶다. 나는 누구보다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전보다 더 민감하고 세심하게 행동해서 어떻게든 한층 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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