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마개 끼고 하는 아티스틱 스위밍, 어떻게 시작하게 됐냐면요
“저는 10년 동안 아티스틱 스위밍 선수 했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그거 안다는 눈빛으로 팔을 열심히 휘저으며 말을 얼버무린다.
"아 막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 그거 맞죠?" 그럼 나는 웃으며 "네 맞아요"라고 한다.
나도 참 뭘 보고 맞다고 하는지. 근데 그 눈빛을 보면 아는 게 느껴진다.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거.
어른들은 수중발레라고 알고 있고, 좀 더 아는 젊은이들은 싱크로나이즈? 정도 이야기하는 편이다.
정식 종목 명칭이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에서 2017년에 아티스틱 스위밍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아크로바틱 스위밍'이라고 잘못 부르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래도 관심을 가져주는 건 고맙다.
난 다섯 살 때부터 문화센터에서 발레를 배웠다. 그때도 나름 두각을 보여서 여섯 살 때는 일곱 살 언니들이랑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이사를 가면서 발레는 그만두고 수영을 시작했다. 취미로, 학교 끝나고 주 3회 정도 다니는 수준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수영장에서 누가 나를 붙잡았다. 우리 학교 아티스틱 스위밍 클럽 감독님이셨다. 그분은 내게 몇 살이냐고 물으시며,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다. 늘 옆에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재밌어 보인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일단 엄마에게 여쭤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집에 가자마자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엄마 아빠는 반대하셨다. 당시 학교에서 전교 상위권을 하고 있던 내가 공부에 소홀하게 되진 않을까 염려하신 것이 이유였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같이 부모님을 졸랐다. 감독님도 몇 달 동안 끈질기게 엄마를 설득하셨다. 내 체형과 아우라가 싱크로 선수와 꼭 맞다며 잘할 거라고 한번 시켜보시라며 거듭 말씀하셨다. 끈질긴 설득 끝에 4학년 여름,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하나의 조건 하에. 학교 시험 평균이 95점 이상이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운동을 그만두는 걸로 약속하고 말이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고 나는 아티스틱 스위밍과 사랑에 빠졌다.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였다. 원래도 물을 좋아했는데 물속에서 음악에 맞춰 예쁜 동작들을 하니 이보다 재밌을 수가 있을까! 어린 나이였지만 운동을 하며 나다움, 살아있음을 느꼈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좋아하고, 전적인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 건 정말 큰 축복이었다. 그때 나를 알아봐 주고 강경하던 우리 엄마를 설득해 주신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의 일과는 이러했다. 새벽에 일어나 바나나 하나 먹고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새벽 훈련을 한다. 끝나고 다 같이 김밥천국에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간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야간 훈련을 한다. 세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는 집에 와서 또 간단히 먹고 숙제를 하다 잠에 든다. 하루에 다섯 끼를 먹었는데도 몸이 깡 말랐을 정도니, 운동량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티스틱 스위밍과 사랑에 빠졌고, 강한 동기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계속 운동을 할 수 있었다. 힘들어도, 매일이 정말 즐겁고 재밌었다. 프로 세계의 쓴맛을 보기 전까지는.
그해 11월, 처음 나간 시합에서 아리따웠던 내 파아란 수중화장은 눈물로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