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Book Selene # 43 : by Curtis ]
초등학교 시절 커다란 운동장 한편에는
수돗가가 있었다.
등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쉬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참 익숙했지만
지금은 조금 낯선 등나무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요즘은 흐릿한 기억이지만,
5월쯤이면 등나무에서도 화려한 꽃을 피운다.
보랏빛으로 꽤나 아름다운 모습이 예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등나무 꽃도 아름답지만
수천 개의 꽃들을 한꺼번에 보는 모습은
하나의 장관이다.
이렇게나 아름답고,
평소에는 햇빛을 가려 그늘을 내어주는 등나무지만
(덕수궁 석조전 앞에도 등나무가 무성하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등나무를 경시했다고 한다.
다른 물건에 의지해야만 일어설 수 있다며
뼈대가 없고, 어미의 목을 감아 죽이는 나무로 천대받았다.
그렇지만
신라시대에는 등나무와 관련된 설화가 하나 있었다.
한 화랑을 사랑한 두 처녀 이야기이다.
화랑이 전쟁에 가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두 처녀는 같이 연못에 몸을 던졌으나
죽은 줄 알았던 화랑이 돌아왔고,
자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역시 연못으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
그 뒤에 그 자리에서는
팽나무와 그것을 감싸는 등나무 두 그루가 자랐다.
이는 화랑과 두 처녀를 상징하고,
여기에서 등나무의 꽃말이 유래됐다고 한다.
등나무의 꽃말은
"사랑에 취하다"
등나무 하면 또 생각나는 한 가지가 있다.
요즘 패션, 인테리어에 많이 사용되는 그 라탄.
그 소재가 바로 등나무인데,
사실 라탄은 꽃이 피는 등나무가 아니다.
이는 목재라고 하기보단 가느다란 끈에 가깝다.
대나무보다도 훨씬 질긴 이 나무는
한자가 藤(등나무 등)이라 오해를 산 것이다.
그리고
등나무는 쌍떡잎식물에 콩과이지만
라탄은 외떡잎식물이며, 야자에 속한다.
아주 다른 두 식물이지만,
같은 한자가 쓰여 등나무로 똑같이 번역이 되는 것이다.
등나무가 문득 그리워지는 오늘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를 한 번 가봐야겠다.
아름답기도 하고, 그늘도 되어주는 등나무에 기대어
잠깐 쉬어가면 좋겠다.
[Flower X Culture ]
Selene Editor. Curtis
201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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