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튤립 Sep 24. 2019

지하철에서 우연히 자리가 났을 때 무척이나 행복했다.

행복을 느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적에



회사를 다닐 적에, 자리가 꽉 찬 만원 지하철을 타면 종종 하는 나만의 '점치기'가 있었다.

금방 내려야 할 때에는 문 앞에 서서 가지만, 꽤 오래 타고 가야 할 때엔 왠지 빨리 내릴 것 같은 사람 앞에 서서 다음 정류장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 세 정거장 내에 자리가 나면 그 날은 '운수 좋은 날',  내가 내리기 얼마 전에 자리가 나거나 내가 내리는 곳에서 같이 내리면 그 날은 어딘가 찜찜한 날이다.

보통 빨리 일어날 것 같은 사람은 현재 어느 역을 지났는지 자주 확인하거나, 어딘가 분주해 보이는 표정을 지닌 사람이라고 스스로 기준을 정해 놓았다. 종종 눈을 감고 가다가 갑자기 일어나 문을 빠져나가는 분들에겐 속으로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 그제야 편하게 출근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출근길, 나만의 점치기 승률은 한 55% 정도는 됐었다.

거의 복불복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승률이지만, 그 순간이 나의 유일한 행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과 관심이 많았기에, 회사를 다닐 적에는 어떻게 해서든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내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을 하기는 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 어떻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지, 나의 1년 뒤 5년 뒤 10년 뒤는 어떤 모습일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채로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런 와중에 할 수 있는 노력은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기에 앞서 말한 나만의 의식(?)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물론 회사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퇴근 후 회사 일은 잊고 다른 활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노력도 해 보았다. 그렇지만 일과 삶을 분리해 생활하고 생각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기에,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집까지 함께 따라왔다. 그때, 회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 엄마가 내 표정을 알아차리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셨는데 '아무 일 없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다'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작은 울타리 안에서 작은 하늘을 바라보며 그곳이 내 세상의 전부인 양 지냈던 것 같다. 무책임하게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니까.


그때는 그 순간들이 참 아깝게 흘러가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인데 말이다. 결과론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는 그때도 감사한 시간이 되었지만, 결코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순간이다.


가을을 담은 코스모스 꽃다발 by selene


여하튼, 그때의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지금의 내가 있게 만든 건 '꽃'이었다.


회사를 출근해야 하는 날에는 다음 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출근 시간이 되면 억지로 발걸음을 이끌며 회사로 향했다. 퇴근 시간 전까지 약 9시간 동안, 하루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꽃을 배우는 첫 주말이 왔을 때에는, 출근 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벼웠다. 예쁘고 향기로운 꽃을 만지러 가는 것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행복한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보니 조금씩 조금씩 꽃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삶을 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고, 여차저차 해서 결국 지금은 꽃이 나의 일이 되었다.

해 질 녘, 그림자에 비춘 유칼립투스 by. selene

회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힘듦 만큼이나 꽃을 하기까지도 수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너무나도 다른 길이니까,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시간이 헛되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내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결심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도전을 시작했다.


지금도 역시 부족한 점이 많아 성장해 나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확신할 수 있는 건 무척이나 행복해졌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더욱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선해져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도 넓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과 구름이 이렇게 예뻤나?' 하며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생겨났다.


어느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이 없는 밤 하늘 by selene
무척이나 좋아하는 푸른 하늘과 초록 색 by selene


지하철을 탈 때에면 그날의 운을 점쳐보는 의식은 여전히 계속하고 있지만, 이제는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이 참 많아져 고민이 있더라도 어렵지 않게 해결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보면 주변의 상황은 딱히 변한 게 없었지만, 나의 생각들이 그때의 내 세상을 참 좁게 만들었던 것 같다. 저 먼 우주에서 바라보면 티끌만큼도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었을 텐데 말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답답했던 과거의 내가 있었지만, 지금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이기에 행복한 내가 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제는 일상 속에서 잔잔한 행복을 느끼며 주변에게도 행복한 기분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Selene Florist. hyei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