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임신 이야기
어? 대조선 옆에 희미한 선이 보이는 것 같은데?
눈을 한 번 지그시 감고 떠도 아주 미세한 한 줄이 또 보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지만, 믿기지 않아서 한두 시간 간격으로 연달아 두 개의 임신 테스트기를 더 사용해 보았다. 총 세 개의 테스트기에는 그렇게 희미한 선들이 쪼르르 생겨있었고, 나는 그제야 확신했다.
'내가 엄마가 되었구나!'
그래도 테스트기만으로 속단하긴 이르니까, 빠르게 산부인과로 나섰다.
의사 선생님께서 피검사 결과는 다음 날 나온다고 했지만, 나는 벌써 이 기쁨을 가족들에게 빨리 알리고 싶어졌다.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아기가 생기면 남편에게 깜짝 놀랄만한 이벤트를 준비해야지~ 하고 늘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상황이 되니 입이 너무 근질거려 어쩔 줄 몰랐고, 남편이 퇴근 후 회사 근처에 있는 샤부샤부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우리는 그 앞에서 만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임밍아웃'을 해버렸다.
식당 앞에서 나는 남편의 눈을 감게 한 후, 테스트기를 손에 쥐어주며 '무엇인지 맞춰봐!'라고 말하며 퀴즈를 냈다. 남편은 '여보가 만든 거야? 펜인가? 뭐지?' 하며 촉각만으로 테스트기를 탐색하다가 눈을 뜨고 그 정체를 확인하더니 금세 충혈된 토끼 눈이 되었다. 혼자 테스트기의 두 줄을 봤을 땐 '어 이게 진짜인가?' 하며 어리둥절해했던 나인데, 남편이 재차 '진짜야? 진짜야~?' 하는 말을 들으니 눈물이 주룩 나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추운 겨울, 3주 차 아가의 엄마 아빠가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서프라이즈 임밍아웃이 아니었다는 것에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 아쉬움은 엄마아빠께 임밍아웃을 할 때 다 해소했다. 엄마아빠께서 나의 서프라이즈에 아주 깜빡 속아서 너무너무 행복했다!)
다음 날, 산부인과에서 '피검사 결과 수치 20, 임신입니다. 축하드려요!' 하는 연락이 왔고 1~2주 뒤 초음파 검사를 위해 내원하라는 메시지가 함께 남겨져 있었다. 피검사 수치는 10 이상이면 임신이라고 진단이 되고, 그 후 기하급수적으로 수치가 쭉쭉 늘어나게 되는데 (이를 더블링 현상이라고 한다.) 그 당시 내 주수는 대략 3주 차 즈음이었다. 이제 약 2주 뒤면 아기집을 볼 수 있다니! 인체의 신비를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그리고 2주 후, 5주 3일 차가 된 날 초음파로 아기집과 난황을 보았다. 학창 시절 가정 시간에 배웠던 그 임신의 과정이 내 몸에서 직접 일어나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산부인과에서 뽑아주신 초음파 사진을 소중히 집에 가져와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임신 기록장에 꼭 붙여준 후 아기에게 쓰는 일기를 남겼다. 겉에서 보기에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내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들어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리고 또다시 1주일 후 6주 3일 차, 내 뱃속에는 정말 작디작은 0.5cm의 생명체가 자라 있었다. 내 손톱보다 작은 생명체에서 '쿵-쿵-쿵-' 하고 뛰는 우렁차며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니 뭐랄까, 기특했고 또 감동스러웠다. 이제 나는 약 열 달간 두 개의 심장과 함께하며, 남편과 함께 인생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임신 극 초기이기에 태아가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시기이지만, 남편은 곧잘 배에다 대고 아기에게 태담을 읽어주고 또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아내를 위해 더 마음을 써 주었다. 나 또한 임신했다고 해서 너무 움직이지 않으면 더 좋지 않다고 해서, 원래 하던 운동도 강도를 조금 약하게 해서 꾸준히 하려 노력했고 아기를 위해 좋은 것들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외관상으로 전혀 변한 것이 없어서 내가 임산부라는 것이 가끔은 믿기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기분전환 삼아 방문한 백화점에서 너-무 피곤해 걸을 힘이 없어 남편에게 기대다시피 다니다가, 20분 만에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던 날에 '아 내가 진짜 임신을 했구나' 하며 그 변화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던 일상이, 소중한 생명을 기다리는 날로 바뀌니 하루하루가 빠르게 흘러갔고 조금씩 자라나는 아기를 만날 때마다 우리 세 가족의 앞날을 그려보는 기대감 있는 일상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산부인과 정기 검진을 갈 때마다 점점 더 우렁차지는 듯한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열 달 동안, 두 개의 심장을 지니고 있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을 하는 중이야!'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엄마가 될 준비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