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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셀레네 Jan 29. 2024

임신기간은 예측불허!

너무나도 건강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임신했음을 처음 알게 되고, 초기에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임신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출산 시까지 잘 유지되는 게 중요해요!’


30년 조금 넘는 세월을 살면서 아픈 곳이 거의 없이 아주 건강하게 살아왔던 나에게, 이 말은 전혀 대수롭지 않은 말이었다. 때문에 그때는 '지당한 말씀이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20주 차가 훌쩍 넘어갈 즈음 갔던 정기 검진에서, 태반이 아직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괜스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6.8cm였던 우리 아가의 초음파 모습


전치태반의 원인이 되는 항목이 여러 가지 있었지만,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은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청천벽력과도 다름없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병원에서 나온 후, 그날 하루는 검색창에 전치태반 관련 정보와 출산 후기를 찾아보는 데에 시간을 쏟았다. 혈 덩어리인 태반이 아기보다 아래에 있으면 출산 시에 출혈이 많아 무조건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데, 제왕절개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나였기에 며칠간 수술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인 날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픈 곳 없이 지금껏 아주 건강하게 살았기에 당연히 자연분만으로 출산을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왕절개를 할 수도 있다니! 수술은 너무너무 무서운데?’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뱃속의 태반이 위로 올라가기 만을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십 주 차 후반 즈음 태반이 잘 올라가지 않아 제왕절개를 해야 함이 확정되었고, 어찌 되었든 출산 방법이 정해졌다는 사실에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하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제왕절개로 넘어가는 산모들이 반 이상이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위로 아닌 위로를 받으며 말이다. (완전 전치태반이 아님에도 나름 감사했다.)


어찌 되었든 전치태반을 가진 사람은 고위험산모 분류에 속하여, 나는 아닌 밤중에 고위험 산모가 되어 버렸다. 임신 기간 동안 특별한 힘듦이나 고통이 없던 내가, 갑자기 고위험 산모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기껏해야 임신 초기에 냉장고를 열면 냉장고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남편에게 ‘냉장고 빨리 열었다 닫아줘!’ 하고 부탁한 것과, 좋아하던 바디워시 향이 너무 역해서 사용을 금했던 것 빼고는 모두 무탈하게 지나간 날들이었는데 말이다. 이제 고위험 산모가 되어버린 이상, 몸을 조금 더 사리자 싶어 져서 원래 매일 거의 한 시간씩 하던 산책도 잠시 쉬어가게 되었다.


조심스레 30주 차가 넘어서고 어느새 아기를 만나기로 한 예정일 3주 전이 되었다.

임신 중반기와 후기에는 방광이 눌려 새벽 중에도 화장실을 정말 자주 갔고, 그날도 자다가 어김없이 화장실이 급해 새벽에 볼일을 보는데 무언가 느낌이 싸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내리려고 보니 전치태반의 위험 신호인 혈이 가득 보였고 그 순간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즉시 응급실로 향했다. 하위태반 진단을 받게 된 날, 집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짧은 거리이지만 차에 앉아서도 배에 손을 얹고 초조한 마음으로 아기를 부르며 움직임을 확인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초음파를 보았더니 다행히 아기의 심장은 콩콩콩 잘 뛰고 있었고, 꾸물꾸물 뱃속에서 잘 놀고 있는 모습까지 확인하니 그제야 안도가 되었다. 그리고 귀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수축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두어 시간 침상에 누워 수축이 잡히는지 확인을 했다. 남편은 들어올 수 없었기에, 안쪽 사정을 모르는 남편이 복도에서 혼자 걱정하고 있을까 싶어, 괜찮으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검사를 이어갔다.


다행히 별 이상이 없어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지만, 언제 또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너무 겁이 났다. 그러고 역시나 출산 예정일을 2주 앞둔 새벽에 또다시 출혈이 발생했고 그 즉시 응급실을 찾아가니, 지속해서 출혈이 발생하면 위험한 신호일 수 있기에 고위험 산모 집중치료실에서 입원을 하라는 교수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출산을 위한 짐도 아직 싸놓지 않았는데, 갑작스러운 입원이라니! 그리고 언제 퇴원할지 기약이 없다니! 너무나 막막하고 울적했다. '마지막 만찬인 고기도 못 구워 먹고, 남편과의 마지막 데이트도 즐기지 못했는데...' 하며 말이다. 그렇지만 뱃속의 아기와 나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까, 못다 한 정리와 짐 싸기는 남편에게 맡기기로 하고 곧장 입원을 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당시

남편이 깎아다 준 과일과 간식거리들을 먹으며 와식생활을 하는데 전혀 기운이 나지 않았다. 고위험 산모 집중치료실은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면회가 가능하여 남편은 함께 있을 수도 없었고 무거운 몸을 그저 딱딱한 침대에 뉘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OTT를 보려고 시도했지만 흥미가 생기지 않아 금세 전원 버튼을 눌렀다.


밤이 되자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병실에서 각 환자들의 이야기가 어렴풋 들려왔다. 아직 예정일이 도래하지 않았는데 급하게 출산을 하게 된 쌍둥이를 가진 산모, 수축이 올 때가 아닌데 수축이 와서 너무 아파하는 산모,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밤늦게 입원을 하게 되어 입원 절차를 밟는 산모 등. 커튼 너머로 또렷이 들리는 제왕절개 수술 관련 설명을 엿들으며, 곧 내가 겪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 너무 무서운데,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 때문인지 새벽이 돼서도 고요할리 없는 병실 환경 때문인지, 어느새 침대 옆 창 너머로 해가 들기 시작했다. 밤을 꼴딱 새 버리는 바람에 고위험 산모, 그리고 수면부족 산모가 될 판이었다.

밤새 진행한 수축검사도 전혀 이상이 없었고, 더 이상의 출혈도 진행되지 않았기에 회진을 하러 오신 교수님께 출혈이 발생되면 곧장 응급실로 오겠다고 사정하고 또 사정하여 하루 만에 퇴원을 했다. 기약 없던 입원생활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했다.

퇴원을 해서, 예약해놓았던 만삭 사진도 무사히 찍었다!

'우리 집이 이렇게 포근하고 좋았네!' 하고 생각하며 출산하기 전까지 되도록 이불속에서 근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나의 뱃속 사정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기어코 출산 일주일을 앞두고 세 번째 출혈이 생겨, 세 번째 응급실 방문을 했다. 검사 결과, 이번에도 별 이상은 없어 출산일 전까지만 몸을 잘 추스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안도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를 낳으면 당분간 고깃집에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조심조심 고기도 구워 먹고, 카페에 가서 남편과 180도 바뀔 우리의 삶을 상상해 보며 출산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출산 전 날인 9/14일이 되었고, 미리 싸놓은 짐을 챙겨 남편과 함께 세 가족이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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