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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튤립 Apr 26. 2024

아가야 안녕! 나의 제왕절개 출산기

이제부터 우리는 세 가족

기어코 출산 예정 시간 60분 전이 다가왔다.

1월 25일, 아기가 생긴 걸 처음 알고 나서 꼬박 37주가 되는 날 나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엄마가 되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앞으로 평생 누군가의 삶을 함께 도와주고 지켜본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이제 출산을 하고 나면 내 삶은 어떻게 변할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뱃속에 있는 아기의 얼굴이 너무 궁금해서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니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이제 분만실로 이동할 시간. 병실 침대에서 이동식 침대로 옮겨 눕는데,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어디론가 도망칠 수만 있으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배가 불뚝한, 잽싸지 못한 임산부. 사면초가에 빠진 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다 끝이 있어, 시간만 잘 흘러가면 내 곁에 아기가 뿅 하고 생겨 있을 거야!’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연신 심호흡을 이어갔다. 몸에 덮인 얇은 천 아래에서 양 주먹을 꽉 쥔 채, 천장을 바라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귀까지 들리는 듯했다.


분만장으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느낀 긴장감은 평생 기억에 남을 떨림이었다. 들어가기 전 간호사 선생님이 남편에게 ‘아내분께 한 마디 해주세요’ 하고 이야기하자 남편이 손을 꼭 잡아주며 ‘잘하고 와, 사랑해’ 하고 말해주는데 0.1초 만에 눈물이 왈칵 고여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지금 이 순간은 오롯이 나만이 할 수 있는 거니까,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으니까, 나를 믿고 잘해보자!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손을 흔들며 분만장으로 들어섰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로 내가 꽤나 의연해 보여서 오히려 더 안쓰러웠다고 했는데, 아마 내 마음속 굳은 결심이 표정에 드러나서 그랬나 싶었다.


분만실로 바로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입구 앞에서 잠시 대기를 해야 했다. 마취과 선생님이 오셔서 굽은 새우등 자세를 정말 힘들 정도로 잘해줘야 마취가 잘 된다며, 배가 나와서 힘들겠지만 잘해달라고 부탁을 하시는 터라 다시 또 긴장모드가 발동되었다. 대학병원이라 전공의가 함께 실습을 하니 양해해 달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는데, 그 즉시 내가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분만실 입장!

여기는 더 드라마 속 장면이었다. 차디찬 스테인리스로 가득한, 약간의 냉기가 도는 공간. 벽에는 수술 시작 시간과 경과 시간이 표기되는 시계가 있고, 커다란 분만실 가운데에는 수술대가 떡하니 놓여있었다. 여러 명의 도움으로 수술대 위로 올라가, 하반신 마취를 위해 옆으로 누워 굽은 새우등 자세를 취했다. 눈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분명 길고 두꺼운 주삿바늘이 정확히 내 척추 사이를 깊게 세 번 찌르고 나서야 하반신 마취가 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는 마취과 전공의의 실습도 있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너무 공포스러운 나머지 ‘왜 하필 내가 할 때 이런 상황이…’ 하며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쳤다.


마취를 하고 나니 따뜻한 느낌이 하반신에 쫙 퍼졌고, 그와 동시에 서서히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상상과 걱정이 많은 나는 ‘하반신 마취가 풀리지 않아 영원히 하반신이 마비된 채로 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들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분만실로 들어오셨다.

교수님께는 어렵지 않은 수술이시겠지만, 전치태반의 소견이 있던 나는 ‘수혈, 자궁 적출’ 등의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기에 무서움이 더 컸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잘 해낼 거라는, 잘 될 거라는 생각을 계속하며, 아기만 건강하게 잘 태어나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하반신 마취는 되었지만 정신은 또렷하기에, 아래에서 무언가가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음이 어렴풋 느껴졌다. 아기는 언제 나올까 어떤 상황일까 궁금해하던 찰나, 뒤에서 ‘이제 곧 아기 나올 거예요’ 하는 말이 들려왔다. 잠시 정상 박동을 하고 있던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 뱃속에 있는 아기와의 만남이라니, 진짜 내가 엄마가 된다니! 하며 두근거리고 있었는데-


‘으 애애앵!'

여린 울음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생각할 틈도 없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기가 태어났구나, 내 뱃속에서 자라던 아가가 세상 밖으로 나왔구나.’ 무척이나 감격스럽고 또 경이로운 기분이 들었다. 아기가 나온 뒤 처치를 하고 곁으로 데려와 주셔서 숨결을 잠시 나누었는데, 이런 감정을 또 느낄 수 있을까 싶은, 설명하기 아주 어렵지만 행복함은 분명한- 그런 감정이 가득이었다.


무게를 재니 아기는 전날 초음파로 예측했던 것보다 0.4kg이 더 나가는 무게로 측정이 되어서 또 한 번 안심을 했다.(아기가 주수에 비해 작다는 소견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후처치를 할 차례. 분명 이 때는 수면마취로 재워주신다고 했는데 왜 잠이 안 들지? 하는 생각을 하고 눈을 떠 보니 회복실이었다. 아기와 나 모두,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 드디어 출산이 끝났다.


그렇게 우리는 9/15일, 5주년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기를 만났다.


<아기와의 첫 만남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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