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인형 뽑기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표정에 기대감이 가득하다. 인형을 뽑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5월 초 화려하게 피는 철쭉꽃 색의 셔츠에 초록색 재킷, 거기에 빨간 중절모라니... 이 할아버지 시니어 모델이신가? 할아버지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마지막장을 앞에 두었을 때, 나는 촉촉해진 눈과 메어오는 목을 가다듬느라 허공을 응시했다. 이 그림책, 도대체 뭔데 이렇게 뭉클한 거야?
책을 펼치면 왼쪽 페이지에는 아이의 일상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할아버지의 일상이 그려진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왼쪽 페이지에는 엄마, 아빠도 등장하고 사랑과 관심, 투정과 갈등도 보인다.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는 아빠 목소리도 들리는 듯하고, 자는 아이를 깨워야 하는 엄마의 안쓰러움 가득한 손길도 느껴진다. 호불호가 명확한 아이는 엄마의 신경을 돋우지만, 이 정도쯤이야. 아이는 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놀이터에서도 곁에 누군가가 있다.
오른쪽 페이지로 가보자. 할아버지는 밤에 잠을 자려 누웠는데도 눈이 말똥말똥하다. 할아버지 옆 빈자리에 할머니가 오시는 걸 기다리나 싶지만, '이제 혼자 삽니다.'라는 문장에서 할아버지 옆 빈자리에 놓여 있는 베개는 오랫동안 그냥 거기 있었을 뿐임을 알게 된다. 그 침대에서 일찍 눈을 뜬 할어버지는 긴 하루를 시작한다. 멋진 옷을 입고, 사과 몇 조각과 식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밖으로 나간다. 가끔 노인정에도 갔다가, 인형 뽑기도 했다가, 공원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아내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새 모이도 주며 길고 긴 시간을 보낸다. 할아버지 곁에는 아무도 없다.
왼쪽의 일상과 오른쪽의 일상을 대비해 보여주다 보니, 둘의 만남은 극적이다. 손녀와 할아버지.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뭐든 해주고 싶지만, 손녀말을 놓치고, 손녀는 그런 할아버지가 답답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둘은 공원에도 가고, 나비 잡기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너무도 사랑스럽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쥐어준 인형이 보인다. 인형 뽑기 기계 속에 있던 그 인형이다. 할아버지가 왜 그토록 진지하게 인형을 뽑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았다.
할아버지와 낮에 신나게 놀던 손녀는 잠이 들어 아빠 등에 업혀 집으로 향한다. 할아버지는 잘 가라 인사하고 다시 혼자 잠이 든다.
그래도 괜찮단다. 기다리는 걸 잘해서 괜찮단다.
그림책을 보는 내내 나는 왼쪽의 시간(아이의 시간)과 오른쪽의 시간(할아버지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지켜보았기에, 아이의 시간은 추측 가능했다.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는지, 자기 전에 책을 함께 읽는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밥을 먹으며 무엇으로 투정 부리는지, 자고 있는 모습이 천사보다 더 천사 같아 저절로 다가가 볼에 입술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이렇게 익숙한 왼쪽의 시간과는 달리, 나는 오른쪽의 시간을 지켜보거나 상상해보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혼자 산다는 것의 무게도, 혼자 침대에 눕다 혼자 일어나고, 혼자 아침을 먹고, 길고 긴 하루라는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며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거나,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한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자식과 손주의 방문을 이렇게나 기다리고 환대하는지도 몰랐다.
'기다리는 걸 잘해 괜찮다'는 주인공의 말이 '괜찮지 않다'로 들린다. 손주들을 기다리며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날 때마다 야쿠르트를 사서 냉장고에 쌓일 대로 쌓여 "빨리 와서 야쿠르트 가져가"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던 일을 떠올리며, 나의 부모님도 이 책의 주인공처럼 기다리고 기다리는구나 싶어 더 뭉클했나 보다.
그림책 속 주인공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나는 지금은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그때의 내 모습을 만났다. 그리고 손주를 기다리며 야쿠르트 아줌마를 볼 때마다 야쿠르트를 사놓는, 언젠가는 혼자가 되어 길고 긴 하루 외롭고 쓸쓸해할 부모님의 모습도 보았다.
'기다리는 걸 잘해서 괜찮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애잔하다. '괜찮음'이 '결코 괜찮지 않다'는 것을 나는 시간 속에서 눈치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