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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Jan 21. 2024

여덟 살 때 친구를 25년 만에 만났다

그림책 읽은 후... 강풀 작가의 <얼음 땡!>

며칠 전, 나는 여덟 살 때 골목에서 함께 뛰어놀던 친구를 25년 만에 만났다. 내가 여덟 살이던 1982년, 부모님은 한 시민아파트를 사서 오랫동안의 샛방살이에서 벗어나셨다. 시민아파트는 5층인가 7층짜리였는데 우리 집은 2층이었고 내 친구 영희네 집은 1층이었다. 같은 동에 사는 같은 나이의 우리는, 내가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매일 만나 같이 놀았다. 아파트 앞에서 만나면 우리는 동네 골목 투어를 하다가 동네 친구들이 모이면 공터나 골목에서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얼음 땡, 소꿉놀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사방치기 등 무수히 많은 놀이를 했다. 놀다 지치면 나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고, 친구가 우리 집으로 놀러 오기도 했다. 집에서는 종이인형놀이나 다 쓴 공책을 뜯어 종이딱지를 만들며 놀았다. 문방구에 가서 20원짜리 종이인형을 사는 날이면, 가위로 오리느라 하루가 다 갔다. 오리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옷, 신발, 장신구를 오릴 때까지 끝이 없이 했다. 오리다 지쳐 다 오렸을 때는 인형놀이를 못했고 다음 날부터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놀다 보면 종이인형의 목은 금세 꺾였다. 그러면 목 뒤에 테이프를 붙어 종이인형의 생명을 연장을 하기도 했다.


영희는 동네친구이기도 했고,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은 시민아파트를 떠나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동네는 달랐지만, 영희는 같은 반 친구여서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고 늘 함께 했다. 영희는 중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중학교 때는 서로 쉬는 시간에 친구의 반을 찾아가 10분의 시간동안 수다를 떨었고, 친구의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로 배정받았고, 대학도 각자 다른 학교로 진학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대학생 때까지는 자주 만났다. 친구가 스물다섯 살에 결혼을 하고 동네를 떠나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어린 시절 늘 함께 했던 친구를 25년 만에 만난 것이다. 나이 쉰에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의 안부, 그리고 자식의 안부를 물었다. 25년 만에 만난 친구는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 조그마한 얼굴에 조그마한 키, 그리고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에 말투까지도 어린 시절 그대로였다. 친구도 나에게 25년 전 모습 그대로라고 했다. 25년이라는 시간의 평행선을 우리 모두 같은 템포로 따라갔기 때문이리라. 서로의 가족은 물론이고 가족과의 관계와 형편까지 모든 걸 공유했던 어릴 적 친구여서인지 오랜 시간 못 만났음에도 편안함은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놀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그림책을 만났다. <순정만화>, <아파트>, <무빙>,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의 웹툰을 그린 강풀 작가가 쓰고 그린 책이다. 아빠가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며 그림책은 시작한다.

 "아빠 어렸을 적에는 말이야"

주택가 골목길. 여기에는 리어카도 있고 대문 옆에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도 있다. 어린이들이 동네 골목에 나와 딱지치기, 구슬치기, 공기놀이, 비석치기, 사방치기, 말뚝박기 등 놀이를 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논다. 이 놀이에는 늘 "깍두기"가 있다. 놀다가 시간이 흘러 해 질 녘이면 동네 아이들은 엄마의 "000아, 밥 먹어라~"라는 소리에 집으로 하나둘 들어간다.

아이는 친구들과 음 땡 놀이를 하였다. 골목 멀리 도망친 아이는 잡힐 듯할 때 "얼음!"을 외친다. 얼음이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그곳에 그대로 얼어있다. 누군가가 와 "땡!"을 해줘야 움직일 수 있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엄마들의 "밥 먹어라~"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의 소리도 사라진다. 아이는 "얼음"이어서 아직 얼어있는데 말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주영이도, 규원이도, 민철이도, 준석이도 오지 않는다. 울음이 터지고 눈물 콧물이 앞을 가릴 때 멀리서 거친 숨을 몰아치며 누군가가 다가온다.

"어디까지 갔는지 몰라서 한참 찾았잖아"라며 깍두기가 웃는 얼굴로 말한다. "땡!"이라고.



잊고 지내던 놀이도, '깍두기'라는 말도 정겨웠다. 어린 시절 함께 공터와 골목을 뛰어놀던 친구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25년 만에 만난 친구의 어린 시절 모습과 나의 어린 시절 모습도 작가가 표현한 골목길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왼발잡이어서, 고무줄놀이를 할 때면 친구들과 반대편에 서서 반대편으로 돌아야 했었고, 그래서 '깍두기'를 많이 했었던 것도 떠올랐다.


어릴 적에 우리는 '깍두기'가 있었고,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친구들이 있었다. 달라도 부족해도 함께 노는 것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즐겁게 노는 것과 배불리 밥 먹는 것이 중요했던 그 시절, 내가 경험한 1980년대. 강풀의 <얼음 땡!>과 25년 만에 만난 영희가 태엽을 감아 나를 어린 시절로 끌고 갔다. 가끔은 현재가 아닌 아주 먼 과거로 나를 데려가는 것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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