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이었다. 아이들 학교 <가정통신문>이나 소식 등을 받을 수 있은 앱(e알리미)에 학부모회에서 주관하는 학부모 독서동아리에서 회원을 추가모집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당시 나는 2월 말에 회사를 그만둔 백수였다. 백수의 삶이 낯설고 할 일없는 내 삶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 퇴사하기 전 준비했던 전자책출간 작업에 바로 들어가 그것도 마친 시기였다. 퇴사 후 바로 책 쓰기에 몰입한 3개월의 시간 속에서 나는 '퇴사가 가져오는 결과는 경제적인 부족함 외에도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지 못하면서 스스로 고립되는 것이구나'라고 체득하고 있었다. 가족 외에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었다. 가족과의 대화도 일상의 일들을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아침에는 '우리 ㅇㅇ이, 잘 잤어?', '아침 먹어야지', '학교 갈 준비 다 했어?', 낮에는 '학교 잘 다녀왔어?', '오늘 점심은 맛있었어?', '학교는 즐거웠어?', 저녁에는 '학원 숙제 많아?', '저녁밥 먹자', 밤에는 '언제 잘 거야?', '잘 자~' 정도의 말들만이 매일 반복되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그립던 차에 학부모 독서동아리 회원 추가모집 공지는 마치 나를 위한 것처럼 도드라지게 보였다. 망설임 없이 가입을 신청하고 가입이 확정되길 기다렸다. 3일 후 가입 확정 공지를 받고서 나는 마냥 기쁘고 신이 났다. '아, 나도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구나.', '나도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겠구나.' 빨리 동아리에 가고 싶었다.
6월 말, 드디어 독서동아리에 갔다. 다른 분들은 이미 이전에 한 번 모였어서 서로 낯을 튼 상황이었다. 쭈뼛쭈뼛하며 내 소개를 했다. 그리고 추가모집에 뽑히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마치 대학입시에서 추가모집에 합격해 아슬아슬하게 대학생이 된 것같이 설레고 기쁜 마음이라고 나의 마음을 전했다.
학부모 독서동아리는 대략 8명 정도가 함께하면서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만난다. 서로 어떻게 읽었는지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이나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은 문장을 나누고, 책과 연결된 각자의 경험을 나눈다. 회를 거듭할수록 책을 통해 회원들의 과거의 경험을 알게 되었다. 대화를 통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각자의 기쁨과 슬픔의 시간도 공유할 수 있었다. 카톡방에서도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주 읽으려고 하는 책, 혹은 읽고 있는 책을 사진 찍어 공유하고, 읽었으면 하는 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독서동아리가 지루하지 말라고 '카톡카톡'하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토끼의 독서클럽>이라는 제목의 책을 만나자마자 나는 나의 독서동아리를 생각했다. 미소를 지으며 책을 읽는 동물들의 표정이 2주에 한 번 만나는 우리 회원들의 표정과 비슷했다. 호기심 있게 책을 보는 토끼의 모습은 J회원을, 진지하게 읽고 있는 곰의 모습은 S회원을, 책에 푹 빠져서 마치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호저의 모습은 K회원을 떠올리게 한다. 그네를 타며 두꺼운 책을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읽는 너구리의 모습은 P회원의 모습과 같다.
이 책의 이야기는 책을 좋아하는 토끼로부터 시작한다. 토끼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여름이 지나자 사서 선생님은 도서관 안에서만 책을 읽어준다. 도서관에 들어가도 되는지 잘 몰랐던 토끼는 책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손전등을 가지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 문은 닫혀있어 들어갈 수 없는 상황. 토끼는 아주 작은 문을 발견한다. 빌린 책을 반납하는 작은 문. 그 문으로 토끼는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고, 책장 가득 쌓여있는 책들을 보며 당근 밭보다 더 근사하다고 감탄한다. 책이 있는 곳으로 가 보이는 대로 잔뜩 챙겨 한 권씩 반납구 밖으로 책을 내보낸 후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한다. 어느 날 호저가 토끼에게 어디를 갔었냐고 묻는다. 토끼는 호저를 도서관으로 데려간다. 어느 날은 곰이, 어느 날은 새가, 어느 날은 두더지가, 어느 날은 쥐가... 모두 그 좁은 문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도서관에서 즐거운 책 읽기 시간을 보낸다. 사서선생님이 옆에 온 줄도 모르고 말이다. 사서 선생님에게 들켜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한 동물들에게 사서선생님은 도서관 카드를 발급해 주신다. 카드를 내고 빌려야 한다고, 그리고 다 읽은 책은 꼭 반납해야 한다고 알려주신다. 동물들은 신이 났다. 계속 도서관에 와도 되고, 자랑스럽게 책을 빌려도 되니까.
집 부근에 도서관이 있고, 함께 책을 읽고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나는 학부모 독서동아리 회원이 되어 이 두 요소를 모두 갖춘 행운이 가득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 독서동아리 이름은 '겨자들', 겨우 읽는 여자들이라는 뜻이다. 어떤 책은 어려워서 겨우 읽고, 어떤 책은 아이들 돌봐야 해서 겨우 읽는다. 어떤 책은 슬퍼서 눈물을 닦아내며 겨우 읽고, 어떤 책은 생각할 거리가 많아 겨우 읽는다. 이렇게 겨우 읽는 여자들이 모여, 겨우 읽은 책을 가지고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며 보내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이 있어, 그리고 함께 읽는 이들이 있어 충만하다.
혹시 누군가 사는 게 지겹다고, 사는 게 지루하다고 말한다면, 나는 함께 책을 읽으라고, 혼자 읽지 말고 꼭 함께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혼자 읽는 독서와 여럿이 함께 읽는 독서는 다르다. 내가 이해한 폭보다 더 넓게 내가 느낀 깊이보다 더 깊게 책을 만날 수 있다. 겨우 읽더라도 함께 하니 기쁘다는 것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