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필을 좋아한다. 곧게 뻗은 늘씬함에 어디 하나 타협할 것 같지 않은 강직한 모습이 좋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노란색 혹은 검은색 등 원색의 옷을 입고 있는 모습도 좋다. 지우개 모자를 쓰고 있는 연필이라면, 연필 한 자루만으로도 썼다 지우기를 할 수 있어서 지우개 찾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좋다.
클수록 연필에서 벗어나 샤프나 볼펜을 찾다가 나이 중년이 되어서야 연필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나는 매일 새벽 5시에 연필을 쥔다. 빨간 커버의 공책을 꺼내 펼친 후 연필을 쥐고 줄 그어진 공책을 연필을 써서 채우기 시작한다. 그러면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공간 속에 '사각사각' 소리가 펼쳐진다. 연필 쓰는 소리는 음악을 만드는 소리이다. 무언가 열심히 몰두하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선뜻 건드리기 어려운 소리이다. 창조의 모습이 소리에 담겨있다. 창조의 크기만큼 연필의 길이는 줄어든다. 연필이 줄어드는 것은 사람의 손길과 하얀 지면의 채움과 머릿속 짜이지 않은 순수함을 뒤흔드는 합주이다. 쓰는 이는 지휘자가 되고, 연필 속 흑연과 사람의 손길과 공간의 채움이 소조화롭게 연주되는 오케스트라 합주의 절정에 달하는 소리가 바로 '사각사각'이다.
깎기 전 새 연필은 길고 늘씬한 자태가 마치 '나를 봐주시오'하며 런웨이에 서 있는 모델 모습 같다. '사각사각' 소리가 더해 갈수록 의기양양했던 모습은 변하여, 누구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일반인의 모습으로 자리한다. 시간이 더 흐르고 연필을 잡는 이가 많아지면, 밭에서 따온 상추며 얼갈이배추며 열무를 팔고 있는 시골 장터 속 할머니의 모습처럼 자그마해진다. 작은 모습에 사람들의 손길은 점차 줄어들지만, '몽당연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는다. 몽당연필은 흔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 희소성을 뽐내며 필통 속에 자리하지만, 쓰임은 적어지고 적어져더 이상 소리 내지 못하게된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제목도 없이 연필 한 자루 그려진 그림책을 발견했다. 초록색 옷을 입고 하얀 지우개 모자를 쓴 연필이다. 첫 장을 넘기자 "서걱서걱 연필숲으로... 김혜은"이라고 연필로 적혀있다. 나는 '사각사각' 들었던 연필 소리를 작가는 '서걱서걱'으로 들었나 보다. 사각사각, 서걱서걱, 쓱싹쓱싹... 듣는 이에 따라 이렇게 달리 들리게 연필은 마법을 부린다.
그림책 속 초록연필은 칼로 조심스럽게 깎인다. 깎인 나무는 땅에 살포시 살포시 떨어져 나뭇잎으로 변한다. 그리고 숲이 만들어진다. 그 숲에는 동물들도 평화롭게 지내고 하늘에는 새가 날아다닌다. 바람이 불고 숲의 나무가 휘어진다. 숲의 나무가 잘린다. 잘린 나무는 공장으로 들어간다. 공정을 거친 나무는 연필로 다시 탄생한다. 한 소녀가 연필을 샀다. 그 연필로 다시 나무를 그린다. 다시 숲이 만들어진다. 연필은 또 다시 나무가 된다.
그림책을 보고 난 연필이 더 좋아졌다. 점점 키가 작아지는 연필 속에서 나는 사람의 인생을 보았고,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이제 나는 나무에서 탄생한 연필의 탄생스토리를 알고 있어서인지 연필 냄새가 좋다. 연필에서 나무냄새가 나는 것 같다. 연필을 손에 쥐었을 뿐인데 자연이 내게 온 기분이다. 콘크리트 아파트에 속에서 연필 한 자루로 자연 냄새를 얻었다. 나는 연필을 정말로 좋아한다. 연필 한 자루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