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상처를 입은 게 아닌데도 따뜻한 말 한마디면 허전한 마음이 채워질 것 같은 때가 있다. '이쯤이면 잘 살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문득 '내가 잘 살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 때, 의문의 답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미로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나는 그럴 때 위로가 필요했다. 위로는 단 한 마디면 되었다. '넌 지금 잘 살고 있어'라는 말 한마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말 한마디면 비어있는 마음을 충전시키고 다시 앞으로 나갈 힘을 얻었다. 어깨를 다시 펴고 신발끈을 동여맬 수 있었다.
노래에서도 문학작품에서도 인생을 길로 표현해 왔다.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꽃길도 있고 자갈밭길도, 흙길도 있다. 길 위에서 낯선 이를 만나기도 하고, 반가운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만나기도 하고 사고의 목격자가 되기도 한다. 왜 사람들이 인생을 길로 표현했는지 중년의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길을 걷는 주체는 '나'이지만, 그 길은 내 의지대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오르막에 숨이 차 식은땀이 나오다가도 곧 내리막에 들어서 땀을 식히기도 한다. 걷기 곤혹스러워하면서 자갈밭길을 가다 보면, 평탄한 길 양쪽으로 꽃이 가득한 꽃길이 나오기도 한다.
재작년 걸었던 산티아고순례길이 그랬다. 2만보를 넘게 걸었는데도 아직 갈 길이 멀었을 때, 그늘 없이 태양이 내리쬐는 흙길에 주저앉고 싶었을 때, 계속 높이 오르는 것 같아 그 끝이 어디인지 조차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이런 때가 순례길을 걷는 내내 있었다. 그럴 때면 우연찮게 기부 형식의 작은 간식 테이블을 만났고,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진 꽃길을 만났고, "부엔 까미노"라고 말하며 나의 여정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길 바라는 순례자들을 만났다. 그러고 나면 힘겹던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 걸어볼까 하는 마음이 자라나 목적지를 향해 또 열심히 걸으려고 무릎을 펼치며 앞으로 향했다. 그때 나는 길을 떠난다는 건, 인생을 산다는 건 내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님을, 혼자만이 걸을 수 없음을 알게 알게 되었다.
최숙희 작가의 <길 떠나는 너에게>는 엄마의 마음으로 길 떠나는 아이에게 전하는 말이 담겨 있는 그림책이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첫 길을 떠나는 아이에게 엄마는 말한다.
"낯선 풍경에 마음이 움츠러들기도 하겠지. 처음엔 누구나 그래."
"그만 돌아오고 싶을 때도 있을 거야. 그럴 땐 돌아와도 좋아. 하지만 조금 참고 견뎌야 볼 수 있는 풍경도 있단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때도 있겠지. 그럴 땐 주위를 둘러보렴.... 누군가 네 곁에서 같이 걷고 있을 테니까."
"좀 돌아가면 어때. 서두르지 않아도 돼."
"천천히 가야 보이는 것도 있거든."
"길이 보이지 않아 그만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겠지. 그럴 땐 겁먹지 말고 도와달라고 외쳐 보렴."
"... 너는 지금껏 혼자 걸어온 게 아니야."
그림책 속 길 떠나는 아이가 '중년의 나' 같았다. 나는 작가가 인생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같아, 글 한 줄 한 줄을 소중히 마음에 담았다.
"괜찮다고,
누구나 그렇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가끔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때가 지금인가 보다. 작가의 말이 허전한 마음을 가득 채운걸 보니.
"햇살이 네 앞을 환히 비추고, 바람이 네 등을 살포시 밀어주기를..."빌고있는 작가의 마음을 받아 다시 길을 힘차게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