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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여덟 살 아이로 만드는 창수 씨 눈빛

안녕, 나의 창수 씨

by 최선화

며칠 전 나는 언니와 함께 창수 씨 청력검사하는 병원에 다녀왔다. 두 시간 남짓되는 시간에 아빠는 두 개의 검사를 했다. 의사는 검사결과를 보며 창수 씨의 오른쪽 귀는 거의 못 들을 정도로 기능이 퇴화했다고 말했다.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창수 씨 귀가 어두워지기 시작한 게 20여 년 전쯤인 듯하다.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철 가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콘크리트 깨는 소리 등 큰 소음을 오랫동안 거의 매일 들었을 테다. 20년 전 보청기를 했지만, 그는 보청기 끼는 것을 싫어했다. 귀에 보청기를 끼면 세상 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아 힘들어했다. 공사장의 소음이 더 가깝고도 더 깊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들렸을 것이다. 시끄러운 공간에서 비로소 고요함을 찾은 그가, 듣고 싶은 말만 들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그가 보청기를 멀리하는 것은 그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가 보청기를 멀리하자 답답한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목소리를 키우고 이야기해야 했고, 했던 말을 또 해야 했다. 최근 그는 놓치는 말이 점점 많아졌다. 그럴수록 주변사람들은 더 크게, 더 많이 말하며 점점 답답해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우연찮게 국가에서 보청기 비용을 지원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서야 그는 이제야 슬슬 보청기를 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잘 안 들려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데 크게 걸림돌이 없었던, 아니 걸림돌이 있었지만 걸림돌로 치부하지 않았던 그에게 이제 보청기는 피할 수 없는 물건으로 그의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두 시간의 청력검사하는 동안 두 딸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척 마음에 쓰였나 보다. 그는 자신의 불편함은 안중에도 없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딸들이 너무 고생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는지, 검사 마치고 나와서는 "기다리느라 고생했지?"라고 연신 물었다. "따뜻한 곳에서 기다리는 게 뭐 힘드냐고, 괜찮다'라고 말해도 "기다리는 건 힘든 일"이라고 계속 이야기하셨다. 고맙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을 거다.



창수 씨와 병원 가는 날은 창수 씨가 딸들에게 점심 사는 날이다. 처음에야 "아빠 내가 살게"라고 뿌리치기도 했지만, 이 말이 소용없다는 걸 안 이상, 창수 씨가 점심을 살 수 있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창수 씨 집 부근에서 그가 쏘는 점심을 먹었다. 그는 밥을 먹으며 두 딸을 마치 여덟 살 난 아이처럼 바라보았다. 오십 살이 넘은 두 딸을 어떻게 그런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싶었다. 얼마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깊으면 그 눈빛이 저리도 따뜻할 수 있을까.


그날 나는 아빠의 검사결과를 들으며 속으로 많은 질문을 했었다. 잘 들리지 않는 세계에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는 지난 20여 년동안 어떤 시간을 보내온 것일까. 잘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그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그는 그의 삶을 바라보았을까. 아니면 그것조차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가족을 위해 헌신해 왔던 매일의 시간을 소리의 들림과는 상관없이 똑같은 방식으로 채워나갔을까...


그가 언니와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을 보면서 나는 저 질문들의 답이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잘 들리지 않는 세계 속에는 고립과 고독의 시간이 존재했을 것이고, 그의 책임감과 사랑이 고립과 고독의 시간을 채웠을 거라고 감히 추측해 본다. 그의 큰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사랑에 나는 구슬프다. 그날 그가 나를 바라보는 사랑의 눈빛을 가슴속에 꼭 담아두었다. 그의 사랑이 조금이라도 그리울 땐 바로 꺼내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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