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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Mar 24. 2024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쓴다는 건

글을 잘 쓰고 싶었다.

내 안에 고요히 앉아 있는 작은 경험들을 조금씩 꺼내어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야 나의 지난 시간들이 제자리로 잘 들어갈 것만 같았다. 어떤 것은 아프게, 어떤 것은 부끄럽게, 어떤 것은 멋지게 내 안에 자리하는 경험들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재해석해야만 지금의 '나'가 온전할 것 같았다. 살면서 긁히고 깎여버린 모습에 새 살을 입히고 거친 부분을 다듬어야 앞으로 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가 필요했고,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자, 나는 나의 글쓰기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길 바랐다. 나는 내 글을 브런치스토리라는 나만의 방에 올리며 꿈을 꾸었다. 내 글을 읽고 누군가는 지난 어린 시절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고서는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라고 얘기할 수 있기를, 누군가는 불투명하지만 앞에 펼쳐질 날들을 위해 '그래 다시 힘을 내 보자'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공책에 연필로 글을 썼다. 브런치스토리에는 올리지 않기에 편하게 매일 한쪽을 써 내려갔다. 자기 전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펜으로 또박또박 공책에 적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라고 감탄하며 필사는 계속되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글쓰기 근육이 탄탄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글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나쁜 글이란 무엇을 썼는지 알 수 없는 글,

알 수는 있어도 재미가 없는 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만 쓴 글,

자기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이나 행동을 흉내 낸 글,

마음에도 없는 것을 쓴 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쓴 글,

읽어서 얻을 만한 내용이 없는 글,

곧 가치가 없는 글,

재주 있게 멋지게 썼구나 싶은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없는 글이다."

- 이오덕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에 담긴 이오덕 선생님의 '나쁜 글 채점표'다. 이걸 접하고 나는 멍하니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는 아침마다 쓴 글이 담긴 빨간 표지의 공책을 꺼내 100여 일 꾸준히 써 온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글들이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는 게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나쁜 글 채점표 항목에 걸리는 게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공책에 담긴 글은 나만이 보는 편하게 쓴 글이다. 일상의 사건들을 내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떻게 느꼈는지를 담담히 써 내려간 글도 있고, 특별히 소재를 정하고 쓴 글도 있다. 독자를 지칭하지 않고 써서 그런지 다시 읽어보니 누군가 그 글들을 읽으면 무엇을 썼는지 모를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며 요동치고 있었을 때 쓴 글들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떤 글은 재미가 없고, 어떤 글은 남의 생각을 따서는 흉내만 내고 있었다. 어느 하나 완벽한 글이 없었다. 모든 글이 '나쁜 글 채점표' 항목을 피해 가는 게 없었다. 가치 없는 글 투성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동안 왜 새벽에 일어나 빨간 표지 공책을 펼치고 연필을 들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머물러 있기만 해도 다행이었을 텐데 퇴행하고 있었구나 싶어 글쓰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런 마음이 들자 브런치스토리 앱을 여는 일도 줄어들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자 했던 다짐도 무너져 내렸다. 브런치스토리 작가들이 모여 합평하는 커뮤니티 활동에도 지장이 생겼다. 글을 써야 동료들의 합평을 귀 담아 들으며 내 글을 보듬고 다듬을 수 있는데, 빈손으로 모임에 참석하다 보니 의견을 구할 수도 없었다. 내가 구독하는 작가들이 글을 올렸다는 알림이 계속 왔다. 작가들은 부지런도 하구나, 열심히도 쓰는구나, 용기가 있구나 하면서 알림이 온 글을 읽으며 긴 시간을 보냈다.


지난 3월 6일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린 후 애써 외면한 브런치스토리라는 나만의 방이 점점 먼지가 앉기 시작하자, 며칠 전 브런치스토리에서 알림이 왔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이 말이 힘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몇 주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지 않고서야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글 쓰지 않아 생기는 내 일상의 단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일상의 소재를 구하려는 힘인 '관찰'이 점점 그 힘이 약해졌다는 것이고, 매일이 순간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나의 '성찰'이 점점 더 어두운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는 점이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쓴다는 건, 그 글이 비록 나쁜 글일지라도 내가 조금은 관찰력 있는 사람, 조금은 성찰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도와주는 것임알게 되었다.


언제쯤 나는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이오덕 선생님의 '나쁜 글 채점표'에 걸리는 게 없는 글을 쓰게 될까?

그때가 언제일지 그려지지 않는다. 그때가 오기는 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브런치에 글쓰지 않으며 발견한 내 일상의 단점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나는 더디더라도 뚜벅이처럼 매일 조금씩 걸어가는 것을 선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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