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사람의 현재는 예전보다 못하구나. 잘났었던 과거의 자신을 자꾸만 꺼내오는 것은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고 있거나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웬만하면 그 사람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예전에 말이야~~~"라는 말이 상대방의 현재를 있게 하는 말이기에 조금은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일곱 할머니와 놀이터>라는 그림책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일곱 할머니는 한 명도 빠짐없이 얘기한다.
"여보게들, 내 어마어마한 뜨개질 솜씨를 기억하나?"(젊었을 때 시장 모퉁이에서 유명한 뜨개방을 하던 홍장미 할머니)
"여보게들, 내 어마어마한 자전거 솜씨를 기억하나?"(젊었을 때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에 신문을 돌리던 배달자 할머니)
"여보게들, 내 어마어마한 균형 잡기 솜씨를 기억하나?"(젊었을 때 복잡한 시장통에서 온갖 떡을 이고 팔던 백설기 할머니)
"여보게들, 우리의 어마어마한 한복 짓기 솜씨를 기억하나?"(젊었을 때 마을에서 가장 큰 한복집을 하던 황금실 황은실 할머니)
"여보게들, 설마 이 마을에서 누가 공부를 가장 잘했는지 잊지는 않았겠지?"(젊었을 때 대학에서 수많은 학생을 가르치던 나박사 할머니)
"여보게들, 한바탕 놀았으니 이제 정리할 시간이네. 사건이 터지면 마무리하는 건 자식 열 명을 키운 내 전문이지!"(한평생 아이 열 명을 낳아 기르고 독립시킨 구주부 할머니)
이들의 "내가 예전에 말이야~"가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뒤따라 오는 "벌써 잊기라도 한 게야? 그렇다면 당장 내 재주를 보여 주지!"라는 말과 함께 보여주는 묘기에 가까울 정도로 펼쳐지는 그들의 재능 때문이다. 과거로만 끝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 했던 일이 재능이 되고, 그 재능으로 생활의 달인 경지까지 올랐음을 그림책은 보여준다.
아마도 일곱 할머니들은 먹고살고 자식들 키우려고 시장 모퉁이에서 뜨개방을 하고,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시장통에서 떡을 이고 팔았을 거다. 할머니들은 그때의 고달프고 힘들기도 했을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학교놀이터 정자에서 친구들과 함께할 시간을 누리며 지난 시간을 떠올릴 게다. 할머니들은 그들이 보낸 시간을 전혀 부끄럽거나 창피해하지 않는다. 당당하다. 그들의 당당한 모습이 아름답다. 그 모습을 보니 "지나간 시간이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엄청나게 멋진 거군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