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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Dec 16. 2018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켜 두신 이유

그리웠던 사람의 체온

결혼을 해서 독립하기 전까지는 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40대 중반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홍제동 시장에서 옷가게를 꾸려 가고 있었다.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식사를 마친 후 습관처럼 텔레비전 앞으로 향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취미인 양 어머니는 드라마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쏟아지는 피로를 이기지 못해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드셨고 잠든 어머니 옆에서 배우들의 의미 없는 대사 소리만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럴 때마다 텔레비전을 끌려고 하면 언제 깨셨는지 어머니는 꼭 한 마디 씩 하셨다. 

“그냥 놔둬라.”

평소에는 늘 전기요금을 아껴야 한다며 불 끄라는 잔소리를 하시던 어머니였지만, 이상하게도 텔레비전은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켜 두시는 일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난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나이 든 분의 심술궂은 변덕 정도로만 여겼다.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한 후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고 지내는 일이 많았다. 사는 것이 바빴고 나 자신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힘겹게 지내다 보니 그렇게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잊혀갔다. 

어머니는 늘 밤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곤 하셨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젊은 시절부터 나는 텔레비전을 그리 많이 보는 편이 아니었다. 예능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드라마는 막장으로 치닫는 내용들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한 마디로 볼 게 없다며 텔레비전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꽤 오랜 세월 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고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품 안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불현듯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텔레비전을 찾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유치하기 그지없다고 여겼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간혹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일도 생겼고,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되는 순간도 경험했다. 텔레비전을 보는 순간에는 적어도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는 시간도 길어지게 되었다. 

그때서야 문득 깨달았다. 전기료를 아낀다고 불도 제대로 못 키게 하는 어머니께서 밤늦게까지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켜 두신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라는 것을. 누나는 이미 결혼을 하여 집을 떠난 상태였고, 나와 여동생은 모두 성인이 되어 친구들 혹은 연애 등 각자의 삶을 찾아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밤이 깊어지도록 집은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께서 집으로 돌아와도 마땅히 이야기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별을 했으니 대화를 나눌 수조차 없었고, 자식들은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거나 집에 있다고 해도 각자의 세계에 빠져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으니, 유일하게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단이 텔레비전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생명 없는 차가운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일 뿐이지만 그것을 통해 어머니는 사람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싶으셨던 것이다.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사람 냄새를 맡는 경험을 텔레비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어머니는 텔레비전으로 달래신 것이 아닐까?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텔레비전을 켜 놓는 동안에는 스멀스멀 밀려오는 고독감을 억누를 수 있지만 텔레비전이 꺼지는 순간 다시 고개를 드는 숨 막히는 적막감이 어머니는 싫으셨을 게다. 그래서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그렇게 끄지 못하도록 말리셨던 게 아닐까? 텔레비전을 끄는 순간 사람 냄새도, 사람들의 따뜻한 체온도 사라지고 말 테니 말이다. 그제야 어머니의 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한 나 자신이 못되고 부끄럽게 여겨졌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어머니가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게 한다면, 여러분의 어머니도 사람이 그리운 것일 수 있다. 차마 쑥쓰러워 말은 못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것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당장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어머니께 말을 한 번 걸어 보시라. 어머니의 얼굴에 슬쩍 스쳐 지나가는 반가운 미소를 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어머니께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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