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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Dec 30. 2018

겨우내 말라죽은 아이비가 인간관계에 준 교훈

멀리 있는 사람들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야...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스킨답서스와 파키라, 아이비 같이 추위에 약한 화분들을 베란다에서 실내로 들여놓았다. 사는 곳이 아파트 3층이다 보니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아 겨울이면 베란다 온도가 상당히 낮아진다. 자칫 잘못하다 가는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키운 식물들을 얼려 죽일 수도 있다. 다소 비좁긴 하지만 화분들을 실내로 들여놓으면 추위에 얼려 죽이는 일은 막을 수 있다. 그렇게 월동준비를 마치고 겨울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었다. 겨울에는 화분에 물을 자주 줄 필요가 없다. 봄에서 가을까지 외부 기온이 높은 시기에는 활발한 증산작용 때문에 흙이 마르지 않게 물을 자주 주어야 하지만, 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지고 증산작용도 멈추기 때문에 뿌리가 말라죽지 않도록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물을 주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한 겨울에, 냉기 어린 베란다에 나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므로 화분들이 건강한지, 별 이상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겨우 한 달에 한 번 물을 줄 때뿐이다. 다행히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은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실내에 들여놓은 아이비에 물을 주다 보니 잎이 마른 것처럼 보였다. 손을 대는 순간 잎이 바스러지고 말았다. 물이 부족해 말라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흙을 만져보니 밀가루처럼 푸석하게 먼지만 날렸다. ‘아차’ 싶었다. 매일 지나며 볼 수 있는 곳에 놔두었던 아이비가 말라죽다니…. 방심한 탓이었다.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에게만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실내에서 자라는 식물들에게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베란다와 거실은 환경이 다르다. 베란다에 있는 나무들은 이미 잎을 떨구고 동면 모드로 들어가 증산작용도 멈추었기에 오랜만에 물을 주어도 상관이 없지만, 실내에 있는 화분들은 그렇질 않다. 따뜻한 환경에 있다 보니 여전히 증산작용이 일어나고 따뜻한 실내온도 때문에 화분의 흙도 빨리 마른다. 그런데 미처 그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혹시라도 뿌리가 살아 있을까 뒤늦게 물을 줘봤지만 이미 말라비틀어진 잎은 다시 살아나기 어려워 보였다. 그나마 스킨답서스나 파키라는 상대적으로 상태가 양호해 보이긴 했지만 풍성한 잎을 뽐내던 아이비는 아름다웠던 자태를 잃은 뒤였다. 


보기 좋았던 아이비가 방심과 무관심 속에 말라 죽고 말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말라버린 아이비를 보면서 우리 인간관계가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집 바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쓰느라 정작 소중히 지켜야 할 집 안의 사람들에게는 소홀한 경향이 있다. 나의 부모, 나의 배우자, 나의 형제 혹은 자녀들. 비록 가족은 아닐지라도 지켜야 할 아주 친한 친구들. 그들에 대해 어련히 알아서 잘 지내겠거니 방심할 때가 많다. 돈을 위해, 성공을 위해, 명예를 위해, 혹은 허황된 꿈을 위해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쏟느라, 정작 내가 소중하게 가꾸어야 할 사람들은 소홀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관계가 말라버려 되돌릴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말라죽어버린 아이비처럼 내 가족 혹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관심이라는 물이 필요한 건 아닐까? 어쩌면 지금 내가 잘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들이 오롯이 나 혼자만의 착각이고 자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관계도 충분함이란 있을 수 없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관계에 있어 충분함이란 없을 것이다. 늘 관심을 가지고 채우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리고 말라버리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늙으신 부모님, 고생하는 배우자, 말 못 할 고민을 안고 있는 아이들, 친했던 혹은 아직도 친하다고 여기는 친구들, 가깝다고 여기는 동료들, 어쩌면 그들은 어련히 잘 지낼까 하는 나의 방심과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말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뿌리가 마르고 잎이 떨어지고 나서야 때늦은 후회를 할 수도 있다.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자주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는가 뒤돌아보라. 그들이 내 삶에 미치는 소중함의 비중만큼 그들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는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멀리 있어 잡기 힘든 사람들보다는 때로는 내 주위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현명한 행동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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