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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Jan 06. 2019

지식이 아닌 문화와 경험의 차이

지식은 문화적 경험의 산물

아이들에게 간식이라도 해줄 요량으로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다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양갈비를 마리네이드 한다’라는 문장을 보게 되었다. 먹방과 요리 프로그램의 홍수, 그리고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서양 음식을 접할 기회가 흔해졌으니  ‘마리네이드(marinade)’라는 단어가 일반 사람들에게도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마 내가 요리에 관심이 없었다면 여전히 그 단어가 어색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을 다니던 어느 해인가 있었던 일이다. 누나가 병에 든 오렌지 잼을 하나 사 왔는데 라벨에 '마멀레이드(marmalade)'라고 쓰여 있었다. 그걸 본 누나가 궁금했는지 내게 ‘마멀레이드’가 뭐냐고 물어왔다. 아마도 누나의 기대 속에는 그 궁금증을 해결해줄 시원한 답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마멀레이드가 무엇인지 몰랐고 누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모르겠다고 하자 누나가 내게 한 마디 했다. 

“너는 왜 대학 다니는 애가 아는 게 없니?”

누나는 자주 내게 무언가를 물어보았지만 난 답을 준 것보다 모르겠다고 답한 것이 더 많았으니, 누나의 핀잔은 나름 타당한 것이었다. 글쎄, 나는 왜 아는 게 없을까? 내 부족한 상식 수준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인해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문득 누군가의 요리 블로그를 둘러보다, 30년도 넘게 지난 그 시절 누나의 질문과 당황하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내가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이유도 함께 생각났다. 그건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였던 것이다. 즉 내 상식이 부족했다기보다, 내가 경험한 문화의 수준이 누나의 질문에 답을 찾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란 자라난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주변 환경 속에서 경험한 것들이 한 사람의 문화 수준을 형성한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무척 가난했다. 바나나를 처음 먹어본 게 아마도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인 듯하다. 고기를 구워 먹어 본 것도, 회라고 불리는 날 생선을 먹어본 것도 대학원에 진학하고 난 후였다. 밥 대신 빵을 먹는 일도 흔치 않았기에 당연히 잼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다. 잼을 먹어봤다고 해도 흔한 딸기잼 정도일 뿐, 껍질을 함께 넣어 만든 ‘마멀레이드’ 같은 잼은 접해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어머니 혼자 힘겹게 꾸려갔던 가계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문화의 범위는 너무나 좁았다. 이후 경제가 좋아지면서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높아졌지만, 여전히 우리 집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내 문화적 경험의 한계치도 성장의 키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난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인 즉, 피자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해본 것이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 전 까지만 해도 피자에 대해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기에 피자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덕선이와 친구들이 피자를 먹는 장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피자는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던 1992년 이전부터 존재했음이 분명했지만 적어도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던 어느 날, 우연히 대학을 같이 다녔던 후배들과 연락이 닿게 되었고 마로니에 공원이 있는 대학로에서 만나게 되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어느 피자집에 가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내 문화적 경험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비어버린 흰색 종지를 가리키며 아르바이트생을 향해 ‘오이지 좀 더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피자라는 것을 먹어본 경험이 없었기에, 그것을 '피클'이라 부른다는 것은 이미 내 상식의 한계를 벗어난 일이었다. 그건 영어단어의 구사력이 낮아서가 아니라, 내 문화적 경험 속에 피자와 오이피클이 차지하는 공간이 없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실수이기도 했다. 가보지 않은 낯선 나라에 대해 그 무엇도 말할 수 없듯, 경험해보지 못한 피자의 세계에서 난 어찌 보면 당연한 실수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지식은, 때로는 문화적 경험의 빈곤에 의해 제약당하곤 한다. 특히나 명품 브랜드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명품 옷, 명품 가방, 명품 시계, 명품 향수. 요즘은 먹을거리에도 알 수 없는 이름들이 어지럽게 나붙곤 하지만 여전히 난 그 이름들 앞에 취약하기만 하다. 때문에 난 명품을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누군가 명품 제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부끄럽지는 않지만 은근 주눅이 드는 것마저 숨길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랴. 아버지는 가난했고, 그 가난 속에서 태어난 내가 살아온 환경이 명품보다는 값싼 제품들에만 눈이 가도록 만들어져 있었던 것을. 그로 인해 나의 문화적 경험의 상대적 크기도 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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