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은우 Jan 13. 2019

비 오는 날 느꼈던 아버지의 체온

행복한 과거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

[이 글은 몇 해 전 여름에 써 놓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일요일부터 시작해서 벌써 3일째 이어지고 있다. 주말에 잠깐 날씨가 맑았던 것을 빼고는 지난주부터 거의 매일이다시피 비가 내린다. 회색빛 하늘 때문일까? 마음마저도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난 비 오는 날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 내리는 날이면 잊지 않고 떠오르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껌처럼 지독하게 떨쳐지지 않는 기억. 어쩌면 그 기억의 파편에 가슴을 베이는 것이 싫어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히 언제 인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수업을 하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이 귀한 시기라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깜빡 잊어버리고 우산을 가져가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우산이 없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어린 마음에도 어떻게 집에 돌아가야 할까 걱정이 되어 수업시간 내내 안절부절못했던 것 같다. 



그날 비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실을 나설 때까지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준비해 온 친구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 혼자 현관문 앞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노란 비옷을 입고 교문을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뜻밖에도 그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그 당시 아버지는 집에 계시는 날이 많지 않았다. 전국을 떠돌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장사를 하는, 말 그대로 장돌뱅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 지방으로 가면 몇 달씩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기에 평소에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다. 어쩌면 오징어 잡이 배를 타셨는지도 모른다. 그때쯤 집안에는 늘 오징어를 낚는 바늘이 있었으니까. 장사를 했는지 아니면 오징어 잡이 배를 탔는지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그 날은 마침 아버지가 집에 계셨던게 틀림 없다. 아무튼 뜻하지 않게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 난 마냥 신이 났다. 어떻게 집에 돌아가나 시름에 잠겨 있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니 어찌 신나지 않을 것인가.

그런데 아버지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우산도 없이, 달랑 비옷 하나만 걸치고 오신 것이다. 비 맞지 않도록 마중 나오는 사람이 우산을 들고 오지 않다니…. 의아했지만 그 의문은 금세 풀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우의를 벗고 내게 등을 내미셨다. 나를 업을 셈이셨던 것이다. 내가 등에 엎드리자 아버지는 그 위에 다시 우의를 걸쳐 입으셨다. 노란 우의를 사이에 두고 나는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뺨에 닿은 아버지의 등을 통해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교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나쳐 가는 아이들이 아버지께 등에 업은 게 누구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난 속으로 ‘우리 아빠다. 우리 아빠가 나 마중 나온 거야’하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퍼붓는 빗줄기 때문에 상심에 잠겨 있었지만 그때만큼은 정말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따뜻하고 넓은 아버지의 등은 나를 잠의 세계로 이끌었다. 잠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난 아버지의 등 뒤에서 시나브로 잠이 들고 말았다.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따뜻한 그곳에서 누군들 잠이 안 들고 배길 것인가?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먼 길이었는데 난 집에 거의 다 이르러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보니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돌아 집 앞의 계단을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 여기가 어디야?” 

아버지는 집에 거의 다 도착했다고 알려 주셨다. 집에 돌아와 비옷을 벗는 아버지의 얼굴은 비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버지는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닦기도 전에 나를 먼저 꼭 껴안아 주셨다.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30분을 쉬지 않고 걸으려면 꽤 무겁고 힘들었을 테지만,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군소리 없이 짊어지고 살아온 사람답게 아버지의 얼굴에서 그런 내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후의 일은 어찌 되었는지 안타깝게도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 등 뒤에서 느꼈던 그 따듯한 체온만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 없이 많은 날을 보냈지만 그때 아버지의 등에 기대에 잠이 들었던 때만큼 행복했던 순간은 없었으리라. 과거의 행복이 때로는 현재의 고통이 될 수도 있을까? 그때 느꼈던 행복감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누구도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의 허무한 죽음이 연상되어 내게 고통을 안기곤 한다. 그때의 기억은 더 없이 행복하고 소중하지만, 눈물 없이는 그 기억을 떠올리기가 힘드니 말이다. 그래서 난 비내리는 날이 싫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 지도 어느덧 35년이 넘게 지났지만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고 있노라니 어김없이 그때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버지의 등을 타고 온 몸으로 전해지던 따뜻한 체온과 노곤한 행복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손이라도 잡아볼 수 있다면, 가끔은 꿈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치도록 보고 싶은 아버지. 다시 한번 그때 아버지의 따듯한 체온을 느껴볼 수만 있다면…. 


오늘도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전 04화 지식이 아닌 문화와 경험의 차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