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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Jan 20. 2019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행복할까?

다른 사람으로 인해 마음을 베이지 않으려면...

우연한 기회에 [사토라레]라는 일본 영화를 보게 되었다. 주인공이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귀에 마치 말을 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림으로 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영화다.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기발하고 신선한 소재에 끌려 꽤 흥미롭게 보았다. 갓난아기 때 비행기 사고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난 주인공은, 실력 있는 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수술을 배정받지 못한다. ‘이미 늦었어. 이 환자는 수술해봤자 가망이 없겠어. 도대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한거지?’와 같이, 수술하면서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들릴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비밀스러운 일조차 주위 사람들이 알게 되리라는 우려 때문에 주인공과 사귀려는 여자도 없다. 그러니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도 여자들은 그를 피하고, 주인공은 변변한 연애조차 못해본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자신의 생각이 사람들에게 들린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영화 사토라레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정보]


영화를 보는 동안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읽는다는 것은 꽤 불편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비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이고, 어쩌면 사람들 앞에 완전히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 문득 사토라레 주인공의 경우와 반대로 나 혼자서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나에게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나의 삶은 행복해질까, 아니면 불행해질까?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재능이 없다. 그건 애초부터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능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싶어 한다. 사귀는 사람이 정말 나를 좋아하는 걸까? 호의적으로 끝난 비즈니스 미팅에서 상대방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늘 내게 잘 대해주지만 이상하게 가까워지지 않는 그 사람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평소 거리낌 없이 친하게 지내는 내 친구들은 정말로 날 좋아하는 걸까? 내가 이유 없이 투정을 부리고 난 후, 친구들은 혹은 동료들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이렇듯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궁금해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주어진 재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엉터리 독심술을 발휘하기도 한다. 혼자 상상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써내려 가기도 하고, 혼자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독심술을 행하는 경우 그 결과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친한 친구가 오늘 아침에 본체만체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일 때문에 하루 종일 생각에 잠기게 된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에 있었던 사소한 일이 떠오른다. 그 사소한 일을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과 억지로 꿰어 맞추며 친구의 마음이 달라진 것이라 단정을 내린다. 그런 생각은 눈덩이처럼 커져 마침내 혼자만의 오해로 번진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도 시나브로 어색해지고 만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즐거움이 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가끔은 편리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편리한 일보다 불편한 일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고 호의적으로 생각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하거나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자연히 그 사람과의 거리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나에게 늘 호의적으로 대하던 사람이 사실은 나를 질투하고 짓밟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 역시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와 다를 바 없다. 눈뜨고 의식하는 모든 순간이 변함없이 한결같을 수는 없다. 아무리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도 때로는 그 뜨거움이 식을 때도 있고,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도 가끔은 자식에게 서운함이나 답답함을 느낄 수 있고,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때로는 탐탁지 않게 여기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인간은 아주 이기적인 존재여서 아흔아홉 번의 잘해준 일보다 단 한 번의 섭섭한 일을 더 오래 기억하는 법이다. 내게 늘 호감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던 사람이 단 한 번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될지라도 그러한 순간에 상대의 마음을 읽게 된다면 그것으로 인해 내 마음에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다른 마음을 읽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득보다는 잃을 수 있는 실이 더 많을 것이다.


[가시에 찔리지 않는 방법은 가시를 잡지 않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판도라의 상자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판도라의 상자는 희망이라는 선물은 남겨 두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열어보는 것은 반대로 희망은 날아가고 온갖 해악만 남게 될 테니 말이다. 


말은 독을 품고 있기도 하고 가시를 달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 때문에 가슴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상대방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여러 날을 잠 못 이루며 괴로워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나의 마음은 다른 사람이 내뿜은 독과 가시로 인해 늘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남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상처가 덧나 삶에 회의를 느낄지도 모른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도록 만든 것은 그만한 의도가 있기 때문 아닐까? 애써 가지지 못한 재능을 발휘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 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마음을 베이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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