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현실 세계의 상실감이 반영된 소비행태
미래세대는 소비에서도 기성세대와는 다른 두드러진 특징을 보인다. 기성세대는 참으로 눈물겹게 살았다. 그들의 삶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희생’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1965년에 태어나 고도 성장기에 학교를 다니고 1992년 1월에 첫 직장에 입사하여 안정된 성장기를 거친 후 저 성장기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우리나라 경제의 부침을 함께 한 사람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알고 있다.
우선 우리의 아버지들은 비록 고도 성장기에 있었지만 막상 그들은 자신을 철저하게 희생하며 살았다. 당시만 해도 지긋지긋할 정도로 가난했기에 아무리 극적인 성장을 하더라도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말 그대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쓸 거 안 쓰고,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으며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에 자신을 위해 한 푼이라도 돈을 쓴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은 양복 한 벌, 낡은 구두 하나로 십 년을 버티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신발, 좋은 운동화를 사주기 위해 푼돈조차 아껴 썼다.
맞벌이도 흔치 않았던 시절이기에 자신의 등에 올라탄 가족을 위해 홀로 눈물 나도록 뛰어야만 했다. 철저하게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세대가 우리의 아버지들이다. 가족들을 위해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막의 건설 현장에서 고생하던 사우디 파견 근로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안정적인 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지자 소비도 따라서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끼고 절약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소비에도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좋은 차를 사기 시작했고 좋은 옷, 좋은 가방, 좋은 구두, 좋은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들은 여전히 자신을 위한 소비는 미뤄둔 채 가족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절제하는 삶을 살았다. 그들의 소비는 늘 우선순위가 아이들과 배우자에게 있었다.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소비에 있어 기성세대와 확연하게 다르다. 무엇보다 기성세대와 가장 큰 차이는 가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소비한다는 것이다. 가족을 위한 희생과 같은 개념은 없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결혼을 하면 가족을 위한 희생정신이 생기기도 하지만 과거의 세대처럼 자신을 철저하게 희생해가면서 가족을 챙기려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결혼을 한 사람과 미혼인 사람들 간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을 위해서 소비하려는 것만큼은 다르지 않다. 과거 세대처럼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고, 사고 싶은 것 꾹 참으면서도 가족들에게는 입을 것이며 먹을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챙기고 가족도 챙기는 개념으로 변화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더 이상 과거 세대와 같은 희생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튼 미래세대는 자신에 대한 소비도 아끼지 않는데 자세히 보면 그들의 소비는 극단적인 두 가지의 형태로 갈린다. 하나는 극도의 절약이고 하나는 극도의 낭비이다. 그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구입할 때는 능수능란하게 인터넷 정보를 활용하며 한 푼이라도 싼 제품을 찾기 위해 공을 들인다. 여러 사이트를 찾아 가격을 비교해 보고 사용자들의 후기를 찾아 읽어보며 어리바리하게 바가지를 쓰는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세심하고 꼼꼼하게 정보를 검색한다.
물건 하나 구매하는데도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 포털과 SNS, 유튜브까지 활용해 알뜰하고 꼼꼼하게 살핀다. 옛날 엄마들이 잡지나 신문의 쿠폰을 오려서 사용한 것처럼 할인쿠폰을 이용하여 물건을 구매하거나 기프티콘을 알뜰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같은 제품일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싸게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해외 직구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젊은 세대는 정보 활용에 능숙한 자신들만의 장점을 이용하여 가성비 높은 소비를 하려고 한다.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해 과감하게 소비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자녀교육과 내 집 마련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예금이나 적금을 찾아 유목민처럼 정처 없이 떠돌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그들은 삶의 질을 높이거나 삶의 만족감, 삶에서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투자에는 인색하게 굴려고 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도 절대 손에 쥘 수 없는 집을 사기 위해 평생을 고통스럽고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포기하고 현재 삶에 만족하며 지내자는 심리가 그들의 소비에 담겨 있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취직을 하고 결혼을 준비할 때쯤이면 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모 직장인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몇 억씩 하는 집을 장만하려고 아등바등 거리다 보면 삶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며 차라리 현재 삶을 더 만족스럽고 풍요롭게 사는 데 소비하는 게 현명한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목표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목표가 높으면 대다수는 그 목표를 포기해 버리고 만다. 반에서 꼴등하는 아이에게 반드시 서울대를 가야 한다고 하면 그 아이는 그 목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해도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고 포기해 버리고 만다. 대신 공부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시간을 다른 유희에 쓴다. 그런 것처럼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이나 출산, 내 집 마련은 너무 높은 목표이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집 한 채 장만하기도 쉽지 않지만 부모들조차 상당수는 노후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 직장인 중 반수 정도가 노후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43.8%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이다. 자식들 키우느라 자신의 청춘을 송두리째 희생했지만 정작 나이 들어서는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미래세대도 많다. 그래도 성장기에 경제활동을 했던 부모들조차 노후를 걱정하며 살 판국에 그보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자신들은 더할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도달하지 못할 목표에 이르기 위해 청춘을 송두리째 갖다 바치느니 아예 결혼이며 집에 대한 꿈을 포기하는데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포기함으로써 얻는 소득의 여유분을 현실적인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사용하려고 한다. 나이 든 세대는 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나도 한편으로는 평생 고통스럽게 사는 것보다 사는 동안 편하게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생각이 그렇다 보니 미래세대 중 어떤 사람들은 몇 달 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는 명품 옷이나 가방을 스스럼없이 구매하는가 하면 월세보다 많은 할부금을 내면서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이왕 내 돈으로는 못 사는 집, 돈 벌 때 한 번 좋은 곳에서 살아보자는 심리로 강남의 비싼 임대료를 가진 원룸을 빌려 살기도 한다. 고급 음식점에는 나이 든 사람들보다 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젊은 사람들에게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열심히 일만 하는 월급쟁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전월세 살면서 세금이랑 이자만 내다가 죽어서 납골당 한 칸 차지하는 것뿐 아닌가요?’
그들은 그런 삶을 의미 없다고 여긴다. 그렇게 사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부모 세대처럼 허리띠 졸라매고 한 푼 두 푼 모으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번 돈으로 살아있는 동안 아쉽지 않게 쓰다 가는 게 낫다고 여긴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목표를 좇느라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발을 딛고 있는 현재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투자하고 싶다는 것이 소비에 대한 그들의 합리적인 생각이다. 일상적인 소비에서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온갖 정보를 동원하여 노력하지만 그렇게 아낀 돈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자기만족을 실현하는데 소비하는 것이 요즘 젊은 사람들의 소비 형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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