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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Oct 13. 2021

과감하게 투자하고 소비하는 세대(4)

미래세대(The Next Generation)

오래 전부터 미래세대 사이에서 ‘플렉스(flex)’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 단어는 지금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미래세대 사이에서 ‘돈을 쓰며 과시하다’ 혹은 ‘아낌없이 지르다’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1990년대 미국 힙합문화에서 래퍼들이 자신이 가진 귀중품을 뽐내거나 부를 과시하는 모습에서 유래된 용어라고 한다. 주로 부자나 성공한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돈 자랑을 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요즘에는 누구나 이 말을 사용한다. 몇 달 치 월급을 모아 가지고 싶었던 명품 백을 사면 ‘나 오늘 플렉스했어’라며 자랑을 하는 식이다. 평소 3,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사람이 5,000원짜리 음료를 마시는 것도 ‘플렉스했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그러니 플렉스라는 말이 몇 백만 원 혹은 몇 천만 원씩 펑펑 쓰며 과시하거나 돈 자랑을 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아무튼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탕진잼’이라는 말도 한때 유행했다. 무언가를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쓴다는 의미의 ‘탕진’과 ‘재미’를 합성하여 만든 용어이다.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재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소비하는 것이다. 쇼핑몰이나 백화점에 가서 마음껏 사고 싶은 것을 살 때만큼 기쁠 때도 없다. 그래서 가진 돈을 다 써버리는 재미를 일컬어 ‘탕진잼’이라고 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우리 아버지 세대처럼 미래세대는 자신을 희생하며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비록 돈을 벌기는 어렵고 그래서 가진 돈도 많지는 않지만 있는 돈이나마 자신을 위해 소소하게 소비하는 것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어 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캐릭터가 들어간 굿즈를 빠짐없이 모두 사 모으거나, 쇼핑을 나갔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주저 없이 사는 행위 등을 일컬어 ‘탕진잼’이라고 한다. 사실 돈이 없어서 못 쓸 뿐, 돈을 쓰는 것만큼 재미난 일도 없다.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경제 불황과 이로 인한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수입이 많지 않은 젊은 세대가 자신이 가진 적은 금액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기 위해 있는 돈을 써버리는 것을 탕진잼이라고 할 뿐이다. 볼펜이나 생활용품, 저가 화장품, 인형 등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는 물품들에 작은 돈을 쓰면서 그때 느끼는 소소한 재미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비싼 물건을 사기도 한다. 한편으로 보면 마음껏 소비할 수 없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드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가지지 못한 젊은 사람들이 탕진잼을 느낄 수 있도록 저렴한 물건을 파는 캐릭터숍, 뷰티 드럭스토어, 천원 숍 등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 사람들의 소비행태는 ‘가치소비’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무조건 절약하고 아끼는 것이 아니라 비록 조금 가격이 나가더라도 자신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거나 그것을 소비했을 때 심리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되는 재화에는 과감히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의 수준은 낮추지 않는 대신 가격이나 품질, 만족도 등을 꼼꼼히 따져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성향을 지칭한다. 경기가 활황일 때는 흥청망청 써버리는 과시소비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반면 경제가 어렵거나 불경기일 때는 한 푼이라도 아끼는 알뜰 소비가 유행한다.


가치소비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자랑하기 위한 목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과시소비와는 달리 자기만족감을 높일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플렉스’ 역시 나이 든 세대가 보면 이해할 수 없지만 미래세대에게는 과시라기보다는 가치소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치소비는 또한 무조건 저렴한 것만 찾는 것이 아니라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가심비’ 높은 제품에 대해서는 아끼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알뜰 소비와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탕진잼’이라는 것도 ‘탕진’이라는 말이 나타내는 부정적인 뉘앙스와는 달리 심리적 만족을 느끼기 위한 가치소비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극단적으로 소비를 아끼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앞서 말한 파이어족이다. 이들은 경제적 자립을 통해 이른 은퇴를 목표로 한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동안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등의 재테크 수단에 투자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배당금이나 이자수익, 월세나 임대료 등으로 중반 이후의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이 파이어족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다. 40대나 5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고 이후 투자를 통해 들어오는 현금흐름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20대 초반부터 극단적으로 돈을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의 삶에 소비하는 대다수의 미래세대와는 달리 파이어족은 현재의 삶이 비록 조금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노후의 편안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몇 달 치의 월급을 털어 명품을 구입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끼에 십만 원이 넘어가는 비싼 식사를 하는 젊은 사람들을 두고 누군가는 또 허영심 운운하며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젊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일반화하며 젊은 세대를 철이 없다고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행동 뒤에는 그들이 감당해야 할 아픈 현실이 자라잡고 있다. 자신을 희생하며 죽어라 고생해도 그들이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약간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린 것뿐이다.


어리석게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늙어서 오갈 데 없이 허탈감에 빠지는 부모들과 달리 소비와 투자의 합리적인 밸런스를 조절하며 현실적인 만족과 미래에 대한 대비를 병행해 나가고 있을 뿐이다. 한편으로 보면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본다는 측면에서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나와 같은 기성세대보다 더욱 현명하고 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들에게 허영심 운운하며 손가락질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내 경우에는 때로는 그들처럼 살지 못한 나 자신이 후회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젊은 세대는 그들이 마주친 현실을 고려하여 소비에서도 합리성을 추구하고 있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소득이 줄어들면서 가용할 수 있는 지출이 줄어들자 조금 더 효율을 중시하는 소비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공유경제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2000년에 출판한 <소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접속(access)’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언했다. 그가 쓴 책의 원제는 <접속의 시대: 초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그곳에서는 모든 삶이 유료 경험이다(The age of access: the new culture of hypercapitalism, where all of life is a paid for experience)>인데 인간의 모든 경험은 새로운 자본주의 하에서 모두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정보 활용에 뛰어나 미래세대는 좋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저렴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공유경제이다. 자신이 직접 소유하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접속’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공유하고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차는 무조건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된 재화 중 하나였다. 타든 안 타든 내 이름으로 된 차가 있어야 마음이 든든했고 비싼 보험료와 자동차세를 지불하면서도 실물로 된 내 차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차를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손실과 주차의 어려움 등 정신적 피로를 회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차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빌려 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남들이 가지고 있으니 나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소비에서 벗어나 사용과 경험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소비로 바뀌게 된 것이다. 어쩌면 소비의 패턴이 더욱 스마트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워크(WeWork)와 같이 공간을 공유함으로써 임대와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공유 오피스의 개념도 등장하고 있다.


집에 대한 개념도 앞으로는 소유에서 공유로 변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미 ‘코디비쥬얼(codividual)’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코디비쥬얼은 ‘함께(co)’라는 접두어와 ‘개인(individual)’이라는 단어가 합성된 것으로 ‘주거 공유 서비스’를 나타낸다. 거실이나 주방 같은 공간은 다수가 함께 사용하지만 침실이나 화장실처럼 비밀스러운 공간은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우스 쉐어링(house sharing)’과 같은 개념으로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공유 소비 패턴은 일상적인 소모성 재화에서 벗어나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 분야로 소비가 확대되고 있다. 이제 모든 일상생활에서 공유가 더욱 폭넓게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젊은 세대의 소비패턴은 공유경제뿐 아니라 더욱 다양한 형태의 소비패턴을 만들어낼 것이다. 기업에서는 더욱더 젊은 사람들의 소비패턴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숨겨진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모두 pixabay.com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단, 그래프는 직접 만든 것이며 따라서 인용할 경우 허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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