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봉 파운드케이크가 심어준 용기
먹고 남은 한라봉을 이용해서 파운드 케이크를 만들어봤습니다. 한라봉은 그냥 먹어도 달콤하고 맛있지만 향기가 좋기 때문에 이렇게 파운드 케이크를 만들 때 재료로 사용하면 은은한 향이 퍼져 케이크가 더욱 맛있게 느껴집니다. 방법도 간단해서 빵을 만들 줄 아는 분이라면 어렵지 않게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소다를 이용하여 껍질을 깨끗이 씻은 후 강판에 껍질을 갈아 넣고 과육은 즙을 내어 반죽할 때 넣어주면 됩니다. 껍질이 들어가 씹는 맛이 느껴지면서도 입안 가득 한라봉의 새콤달콤한 향이 퍼져 미각적인 즐거움뿐만 아니라 후각적인 즐거움까지 같이 누릴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인터넷을 보면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요리라는 것을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고 어깨너머, 인터넷으로만 배운 것이다 보니 한계를 느끼고 요리가 어렵게 생각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레시피 없이도 대략적으로 어떻게 하면 맛을 낼 수 있을지 머릿속에서 감이 잡히는 걸 보면 말이죠. 제가 요리를 처음 시작한 건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잔치국수 만드는 법을 보고 따라한 것이 나름 맛있다고 느껴지면서부터였는데요, 아마도 그때 그러한 작은 성공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요리에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우연히 시작한 작은 도전이 성공하고 그 성공이 케이크를 만드는 단계까지 저를 이끌어준 것이죠.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던 때가 떠오릅니다. 워낙 운동신경이 둔한 데다 어린 시절에 계곡물에 빠져 죽을뻔한 트라우마 때문에 물에 대한 공포가 심해 수영을 잘 배울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수영이 늘질 않더군요. 강습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날 때까지 25미터 레인 하나를 왕복하면 숨이 막혀 죽는 것 같았고 연속으로 몇 바퀴씩 왕복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보다 몇 개월 뒤에 들어온 사람들조차 저보다 먼저 상급반으로 치고 나가더군요. 제가 한 바퀴 돌고 헉헉거릴 때, 저보다 늦게 수영을 시작한 사람들은 다섯 바퀴, 열 바퀴씩 쉬지 않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난 운동신경이 둔해. 저 사람들은 젊어서 힘이 좋은 거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곤 했죠.
그렇게 10개월이 지났지만 수영 실력은 늘지 않고 여전히 25미터 레인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보다 두 달 늦게 수영을 시작한 분이 제게 세 바퀴만 쉬지 말고 해 보라고 하더군요. 하기 싫었습니다. 호흡이 딸리다 보니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이 턱턱 차고 미칠 것 같은데 세 바퀴라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가 계속 옆에서 강요를 하더군요. 하는 수 없이 시작을 했습니다.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바퀴를 돌면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두 바퀴를 쉬지 않고 더 돌아야 하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습니다. 그렇지만 옆에서 그 친구가 보고 있기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숨이 차고 힘이 들었지만 쉬지 않고 계속 돌았죠. 두 바퀴를 돌고 나니 호흡이 가빠 미칠 것만 같더군요. 그래도 오기가 생겨 포기하지 않고 또 계속했습니다. 결국 세 바퀴를 돌았습니다. 절대 못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해낸 것이죠. 그날 이후로 한 번에 세 바퀴씩 도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 주말에 따로 연습을 더 하다 보니 다섯 바퀴까지는 쉬지 않고 무난히 왕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세 바퀴를 쉬지 않고 돌았던 날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그냥 평소처럼 다섯 바퀴만 왕복할 셈으로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섯 바퀴째가 되니 새로운 기록을 세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 여섯 바퀴만 돌자.’ 그리곤 한 바퀴를 더 돌았습니다. 그런데 여섯 바퀴째 마지막을 향해 가는 순간 한 바퀴 정도는 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멈추지 않고 다시 돌았습니다. 일곱 바퀴.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닙니다. 일곱 바퀴째 도는 순간, 욕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열 바퀴를 채워보자.' 그리고 죽어라 팔다리를 저었습니다. 결국 열 바퀴를 채운 다음에야 멈추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몇 바퀴 더 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무리하는 것 같아 그만 멈추었습니다. 그렇게 25미터 레인을 왕복 열 바퀴, 거리로 따지면 500m를 쉬지 않고 헤엄을 쳤습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도 바로 제 스스로가 만든 것이죠. 이후 팔이 아파 40바퀴에서 멈출 때까지 채 몇 달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 번 물꼬가 트이고 나니 힘들이지 않고 기록을 늘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이죠.
40바퀴 연속 왕복 기록을 세우던 날, 전 그동안 제가 얼마나 소심하게 살았는지, 그리고 도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막상 도전해보니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어찌 보면 생각보다 쉬웠던 일인데 그동안 지레 겁을 집어먹고 도전하지 않았던 것이죠. 아마도 세 바퀴만 쉬지 말고 돌아보라고 조언해준 친구가 없었다면 저는 아마도 지금껏 한 바퀴 왕복에 만족하며 '수영은 나에게 적합한 운동이 아냐. 아무리 해도 늘질 않아'라며 스스로 합리화만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여기고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던 일을 성공하고 나니 진작에 시도해보지 않은 게 후회되더군요.
미국의 유명한 자기 계발 전문가 중 지그 지글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저서가 많이 소개되어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인데요 그분이 쓴 책 중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죠. 시도하지도 않고 지레 포기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긋지긋하게 가난에 시달리던 어떤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는 게 살아생전에 가장 큰 소원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께 복권에 당첨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하나님께 소원을 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복권에 당첨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자기 소원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심술도 부렸습니다. 그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어느 날, 그 사람 앞에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얘야, 그래도 복권은 사고 나서 당첨되길 바래야 하지 않겠니?”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막상 복권을 사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복권에 당첨되려면 우선은 복권부터 사는 것이 순서 아닐까요? 비록 비유적인 일이지만 우리도 이렇게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요? 무언가 도전하지도 않고 지금의 삶에서 더욱 나아지기만을 막연하게 바란다면 진실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요?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이 주연한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시한부 인생으로 우연히 병원에서 만난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그동안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면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이루어간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주제는 간단하지만 꽤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인데, 죽음을 앞둔 이들이 깨달은 건 무엇일까요? 세계적인 모험가 중 하나인 존 고다드는 어린 시절에 이루고 싶은 꿈 100가지를 정한 후 평생 그것들을 실천해 나가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도전이 필요한데 그 도전이 두려워 지레 겁을 집어먹거나 각종 핑계를 대며 피하기 때문에 꿈을 이룰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행여 도전에 실패하면 또 어떻습니까? 도전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그 실패한 도전의 결과를 바탕 삼아 다시 또 도전하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젊어서부터 요리를 하고 싶은 욕망은 있었지만 늘 요리는 어렵고 전문적인 실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피해 왔습니다. 어쩌다 한 두 번씩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별로 결과가 좋지 못했고 그러면 '역시 요리는 어려워. 아무나 하는 게 아냐' 라며 합리화하고 말았습니다. 귀찮다는 생각 때문에 정식으로 요리를 배워볼 생각도 하지 않았죠. 그러나 막상 요리를 시작하고 나니 꽤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서는 꽤 인정받는 요리사로 통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몇 번 시도했다가 '퇴짜'를 맞긴 했지만 언젠가는 요리 에세이를 담은 책도 내볼까 생각 중입니다. 도전해서 안 될 것은 없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도전하세요.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라봉 파운드 케이크]
(재료) 박력분 130g, 버터 80g, 설탕 80g, 한라봉 과즙 40g, 베이킹파우더 1티스픈, 소금 1g, 한라봉 껍질 1개분, 계란 1개 반
한라봉은 농약성분을 없애기 위해서 소금으로 박박 문지른 후 베이킹 소다를 뿌려 다시 한 번 깨끗하게 씻어준 후 강판에 갈아줍니다. 속살의 하얀 부분이 들어가면 쓴 맛이 나므로 겉의 노란 껍질만 갈아주세요.
과육은 잘 짜서 즙만 따로 모아 둡니다.
버터는 실온에서 나누어 크림화 시킨 후 설탕을 여러 번 나누어 넣고 잘 저어줍니다.
계란은 실온에 두어 차갑지 않게 한 후 잘 풀어 여러 번에 걸쳐 나누어 넣어줍니다. 이 때 버터와 계란이 들뜨지 않게 잘 섞어주어야 합니다.
이제 강판에 갈아 둔 한라봉 껍질을 넣고 잘 섞어줍니다.
미리 체쳐둔 박력과 과즙, 소금을 넣고 잘 섞어줍니다.
파운드 케이크의 반죽은 다소 질어보이는데요, 빵틀에 유산지를 깔고 반죽을 부어줍니다. 가운데가 쏙 들어가고 양쪽 끝이 올라오도록 부어주세요.
180도로 예열해둔 오븐에서 25분 이상 구워주세요.
어느 정도 부풀어오르면 가운데 배를 갈라주세요. 배를 갈라주지 않으면 빵이 보기 흉하게 터집니다.
젓가락으로 테스트를 해보아 반죽이 묻어 나오지 않으면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