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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돌 May 02. 2024

넌 육아, 난 게임

끝없는 집안일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유치원 때였나... 맨날 엄마친구 아들네로 게임을 하러 가는 어머니는 엄마친구에게 미안해서인지 결국 나에게도 게임기를 하나 사주셨다.

아무리 할 일이 없던 유치원 시절이라지만 하루종일 게임만 하던 날 보며, 안 되겠다 싶었던 엄마는 하루에 몇 시간씩 시간을 정해주셨다.


나중에 PC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숙제를 빌미로 샀던 컴퓨터를 몰래 전화 모뎀을 연결하여 포트리스 같은 게임을 했는데, 전화요금이 너무 나오자 어머니는 ADSL이라는 초고속무제한 인터넷을 연결해 주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놈의 게임 때문에 톰과 제리처럼 난 몰래 컴퓨터를 하고, 어머니는 그것을 잡아내고, 아버지는 게임에 환장한 날 보고 분노하셔서 컴퓨터를 부숴버리려고까지 하셨었다.


말 그대로 치열한 전쟁, 고성과 체벌, 폭력으로 점철된 전쟁이었다.

나중에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컴퓨터를 스스로 치웠다.

물론 종종 PC방을 가곤 했지만...


이런 게임에 대한 갈망은 내 진로까지 영향을 줬다.


난 대학생이 되고 나서 나 자신을 제어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우연히 신문을 읽다 발견한 뉴스

'교대 - 임용합격률 97%'라는 기사.

이거다 싶었다. 



연애시절 게임을 하고 있을 때 걸려오던 아내의 전화. 뭐 하고 있어라는 질문에 난 항상 이렇게 말했다.

"책 읽고 있어."

난 그때도 아내를 참 좋아했고, 잘 보이고 싶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내가 결혼했다고 변했을까

그럴 리 없었다.

퇴근하고 나서 뻗어버린 채 낮잠을 잤다. 

일어나선 저녁을 먹고, 아내와 대화 몇 마디 나누다가 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아내는 게임만 할 거면 왜 결혼했냐고 원망했지만

"아니, 지금 같이 할 거 없잖아."라는 대답과 함께 난 게임을 했다. 아내가 토라진 것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게임을 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아내도 게임만 하는 내 모습을 꼴 보기 싫어하기도 했고, 조금 외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게임으로 인한 큰 다툼은 없었다.


그런 생활도 잠시.

결혼하고 3개월 만에 아내는 임신을 하게 됐다. 다음 해에 첫째가 태어났다. 

지금의 큰 아이는 너무나 이쁘게 잘 자랐지만, 아기 때는 예민하기도 하고 젖도 잘 안 먹고, 밤에 잘 자지도 않는 조금은 힘든 아이였다. 


아내는 입덧, 임신소양증 그리고 밤중수유 등으로 너무 힘들어했는데, 그 와중에 난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겠다며 밤에는 게임을 했다. 더 이상 그 꼴을 못 보겠던 아내는 게임금지령을 선포하였고 역시나 고성을 동반한 싸움 끝에 패배하여 주말밤에만 할 수 있게 통제를 받게 됐다. 아내는 이 싸움 속에서도 눈물을 많이 흘렸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했으니, 난 당연히 집안일은 아내가 더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내는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고, 일주일에 한 번 청소도우미를 부르자고 했다. 아니 안 그래도 육아휴직 중이라 월급이 반토막 났고, 고작 2시간 청소하는데 5만 원인 청소도우미를 쓰자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한 달이면 20만 원, 25만 원. 너무 아까운 돈이었다. 

난 차라리 내가 매주 청소를 깨끗이 하겠다며 아내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솔직히 이해는 안 되지만, 돈을 떠나서 아내가 원한다면 해줄 것 같다. 그게 뭐라고 싸울 필요가 있을까 싶은...



아이 한 명만으로도 힘들어서 우리는 예민해졌고, 집안일을 누가 하냐 마냐 가지고 다투었으며 그 다툼 끝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아내: 밤중수유, 낮에 육아, 이유식, 빨래, 집정리, 저녁식사, 목욕시키고 나서 캐어

나: 설거지, 빨래 개기, 일주일에 한 번 청소, 어쩌다가 화장실 청소, 저녁식사 가끔, 아이 목욕시키기, 쓰레기 버리기(음쓰 포함) - 이렇게 적고 보니 제법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얼마 전에도 이때 육아일에 대해 아내의 원망 어린 소리를 들었지만 나도 아예 안 한 건 아니다고 강변하였다. 물론 저 일들을 아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해준 건 아니었다. 내가 할 마음이 들었을 때 했지.


큰 아이가 돌 되기 전 둘째가 들어섰고 우리는 12월에 연년생 둘째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때도 난 아내가 잠들었나 싶어 몰래 게임을 하다 걸려 대판 싸운 게 몇 번이었을까... 이런 나의 모습과 힘든 육아로 아내에게 산후우울증이 찾아왔다.


아내는 2살, 1살 두 딸을 재우고자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 2년간의 육아휴직 때문에 집안에만 틀어박혀있다 보니 사람이 어두워졌고 눈물이 많아졌다. 나도 사람인지라 안 되겠다 싶어 100일도 안 지난 둘째는 내가 재우겠다고 선언했다. 새벽에 육아를 하고 출근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서 동료들에게도 살짝 멋진 아빠인척 "어우... 새벽에 100일도 안 지난 갓난아이는 제가 보는데 피곤하네요"라는 말을 흘리기도 하고 말이다. 나중에 아내는 내 동료들한테 자상한 신랑 뒀다는 말을 듣고 엄청 분노했다.


어쨌든 큰 일을 내가 '해준다'는 명분을 바탕으로 난 게임을 다시 대놓고 시작했다. 

왜 게임을 하냐는 아내의 말에, 

"아니 새벽에 둘째를 내가 보는데 이렇게 스트레스 안 풀면 나도 진짜 미쳐!"

"내가 게임을 한다고 집안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요즘에 더 많이 하잖아." 


아내도 그래도 새벽에 아이 보고 출근하는 신랑에게 조금은 고마웠을까?

너 알아서 하라며, 단 해야 할 일 다 하고 나서 하라는 말과 함께 물러나줬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의 자유를 얻고 나서 게임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남편과 아빠로서 갖는 책임감으로 최소한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서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자유롭게 게임을 할 수 있지만... 일주일에 게임을 한 시간도 안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때가 내 결혼생활 중 가장 후회스러운 때이다. 


내가 아내보다 집안일을 더하면 손해 보는 것 같아 싫었다.

아내가 나보다 집안일을 조금은 더 해야, 내 결혼생활 만족도가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왜 인정을 못했을까?

아무리 집안일을 잘 나눠도 어쩔 수 없이 육아에 있어서 여자들이 더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 게으르고, 집안일도 결혼하고 나서 처음 해봐서 아내가 더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아내의 수고로움을 나도 힘들다는 이유로 인정조차 잘 안 해줬으니... 아내도 참 힘들었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요? 변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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