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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돌 Apr 17. 2024

신혼여행

우리의 결혼생활의 서열이 어느 정도 정리된 큰 사건은 신혼여행때 일어났다.


코사무이로 신혼여행을 간 우리는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쾌한 가이드님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 신혼집 이야기가 나왔다. 

군대 전역하고 바로 결혼한 난 모은 돈이 없었고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지방의 낡은 아파트에서 전세로 시작했었다. 그 당시 1억 정도 더 대출을 받았으면 신축아파트를 살 수 있었지만 당시에 1억은 엄청 큰 돈으로 느껴졌고 난 안정적인 선택을 했었다. 아내는 신축을 원했지만.


어쨌든 가이드님의 물음에 아내는 장난스럽게 비가 새는 집이라고(조금 새서 벽지가 젖긴 했다. 금방 고치긴 했지만) 대답을 했다. 난 그 말에 되게 기분이 안 좋아졌다. 비가 새는 집 밖에 못 해온 능력한 남자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격지심일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둘만 됐을 때, 난 아내한테 넌 왜 말을 그런식으로 하냐며 엄청 뭐라고 했고. 아내는 함께 고른 집인데 자기는 그런 의도로 말한게 아니었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며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언짢은 마음을 가진채, 직장동료들과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구입하러 기념품 샵에 들렸다. 몇 개 고르지 않았데도 생각보다 비싸 부담스러운 마음을 느끼던 찰나, 교사였던 아내는 학생들에게 줄 과자도 담고 있었다. 


난 무슨 학생들 것까지 챙기냐며 아내를 말렸다. 하지만 아내는 꼭 사주고 싶다고 하며 기어코 샀는데 여기서 우리는 언쟁을 다시 시작했다. 내 뜻대로 따르지 않는 아내에게 화가나서 언성을 높였고, 놀란 가이드님이 말리러와서야 우리는 다툼을 멈췄다. 


아까 집 이야기부터 시작된 안 좋은 감정은 파국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쉽사리 풀리지 않는 감정을 그대로 두고, 우리는 공항까지 아무말없이 이동했다. 그래도 긴 시간 동안 같이 가야하니 풀어보려고 아까 있었던 일을 꺼냈는데 아내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손을 잡은 나를 뿌리치고 가버렸다. 그 모습에 분노한 난 내가 갖고 있던 아내의 여권을 던져버렸다. 


내가 던진 여권이 떨어지는 소리에 주변 한국인 부부들은 놀라면서 쳐다봤고 아내는 내게 여권을 주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난 "너가 주워!"라고 하고 그냥 가버렸다. 

좌석에 앉자마자 너무 후회스러웠고 돌아가는 길에 빌어야겠다라고 생각하던 중 아내가 비행기로 들어왔다. 당연히 내 옆자리에 앉을 줄 알았던 아내는 다른 사람과 좌석을 바꾸어버렸고 난 돌아가는 길에 아내에게 빌 수 조차 없었다.




성질은 내가 부려놓고 후회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태국에서 돌아오는 밤비행기에서 한숨도 못잔채로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양가에 들려 인사를 드리러가야했기에 나는 양가에 가는 도중에 빌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아내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며 다가온 나에게 아내는 말했다.

"나는 너랑 못살겠으니까 너는 너희집에 가, 나는 우리집에 갈테니."


이렇게 말하는 아내에게 그냥 이 때부터 빌었어야했는데 

한 고집했던 나도 질 수 없다 싶었다. (맞다. 이 때까지도 정신 못차렸었다.)

나: "못 가겠으면 너가 우리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직접 말해. 난 못하겠으니깐."

아내: "그걸 내가 왜 해. 너희 부모님이니깐 너가 말씀드려."

나: "너가 안간다고 하는거니깐 너가 말씀드려."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진짜 전화기를 꺼내들고 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 저 못 내려갈 것 같아요."

"아 그게 아니라요. 저 ㅇㅇ씨랑 같이 못 살 것 같아요."

"ㅇㅇ씨에게 직접 들으시면 될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자 나는 그때서야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냥 이혼이겠구나.

신혼여행 때 가장 많이 이혼한다는 이야기가 나에게 해당되어가는게 실감이 났다. 


다시 무슨 일이냐며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 

그리고 경상도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버린 아내.

다행히 아내가 타는 버스는 2시간 정도 기다려야되는 버스였다.

난 그 때부터 이야기 좀 하자고 아내를 붙잡았다.

놓으라고 하는 아내와 나를 보며 사람들은 쳐다봤지만 그게 중요한건 아니었다.

아내에게 용서를 구해야했다.


격앙된 아내를 겨우 자리에 앉히고 2시간동안 처절하게 빌었다.

정확한 내용은 10년이 지났으니 기억이 안 나지만 어떻게든 이혼만큼은 '무마'시키려고 빌었던 것 같다.

두 시간 동안 아내는 눈물을 흘렸고 나 역시도 눈물로 호소하였다. 

그렇게 아내는 겨우 마음을 돌린다.

나는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세상에서 고집이 제일 센 줄 알았는데, 더 센 사람이 있구나...

이 사람은 한다면 한다는 사람이구나...


우리 부모님께서는 내가 성질 부려서 그랬겠다라고 바로 알아채셨고 아내와 나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처가댁에는 그런 티를 전혀 안내고 신혼여행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나의 이기적인 결혼생활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런데 쓰다보니 집 문제는 열받을만했는데?)


#그깟몇만원 #아내가원하는걸굳이 #다른사람이보는데서여권을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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