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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돌 Apr 24. 2024

연애시절(1)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였다.

아내가 살고 있는 집에 처음 놀러 가서 아내가 해 준 밥도 먹고 야구도 보며 시간을 보내다 방에 놓여있는 기타를 봤다.


"어? 기타 칠 수 있어?"

"아... 조금 배우긴 했는데 진짜 잘 못 쳐~"

"오~ 그래도 한 번 연주해 주라~"

"안돼! 안돼~ 너무 못쳐서 부끄러워"


한사코 거부하던 아내는 계속되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수줍게 기타를 꺼내 들었다.

"아... 진짜 잘 못하는데..." 라고 말하며 아내는 연주를 시작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자탄풍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었던 것 같다.


몇 번 틀리기도 하고, 아내의 말처럼 숙련된 연주는 아니었지만 아내는 열심히 끝까지 연주를 해줬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연주를 해 준 일이 처음이었다.

부끄러웠을텐데 열심히 연주해 준 아내에게 난 "처음이야... 나만을 위한 연주는. 정말 고마워" 이렇게 말을 했어야했다.


그렇지만 드라마속에 나올법한 이런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무드를 난 장난스럽게 넘기고 싶었나 보다.

"와...!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연주 중에"

"가장 촌스러운 연주였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아내가 빵 터지면서 "야!" 이렇게 받아쳐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내가 지금껏 만나본 사람들과는 다른, 여리고 순수한 사람인 걸 몰랐다.



그 때 왜 그랬을까...

야! 이 미친놈아!


아내가 웃긴 웃었는데 눈물이 고이더니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난 너무나 당황해서 해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그냥 날 위한 연주. 이런 게 처음이기도 하고, 너무 부끄러워서... 장난스럽게 표현한건데..."


아내는 계속 눈물만 흘리며 말했다.

"나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연주해준건데... 너가 그렇게 말해서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속상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계속 울고 있는 아내를 토닥토닥하며 사과밖에 없었다.


어렵게 화해는 했지만 아내의 기타 연주는 그 이후로 11년째 다시는 듣지 못하고 있다.

가끔 그 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여전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변명을 하자면...

대학시절 3년 넘게 사귄 전 여자친구와 그렇게 지냈다는 것.

여자동기들과도 서로 갈구며 지내는 관계 속에서 지냈다는 것.

내 아내처럼 여린 여자는 처음 만나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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