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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Oct 11. 2022

거꾸로 거꾸로

내가 며칠 전부터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말야, 거꾸리 운동기구에 등허리를 탁! 두 발을 턱! 걸치고 180도, 200도 점점 땅바닥을 향해 중력을 거스르는데 말야, 유리창에 비친 아파트를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거야

누굴 훔쳐보려는 건 결단코 아니었고 다만, 아 아파트 베란다 창살은 대략 20개로구나, 아 위층 사람은 불그스름한 조명 아래층 사람은 누리끼리한 조명 취향을 가졌구나, 아 아파트란 본디 성냥갑처럼 네모반듯한 것만은 아니고 그 안에 다채로운 도형들이 가득하구나 싶은 찰나에,


등받이 버튼을 과감하게 한 번 더 쿡 눌러서 270도 직각으로 땅바닥으로 떨어질 참인데, 비로소 유리창에 비친 빙긋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거야, 바로 내 얼굴을.


분명 오늘 거울로 봤던 얼굴인데 거꾸리 얼굴은 꽤 낯선 거야. 혈류 압박으로, 중력으로, 막 터질 것 같은 얼굴인데

평온하고 다감하고 싱긋한 눈으로 날 보는 거야. 이 새끼, 이 기특한 새끼, 오늘도 참 애썼다, 말을 건네는 거야.


그래서 생각했어. 가끔 거스르자. 가끔은 거꾸로 살자. 가끔은 멈추고 내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자, 이 기특한 새끼가 요즘 무슨 생각인지 좀 관찰해보자, 싶은 거야.


휘적휘적 감았던 생각들을 스르르 풀며 다시 등받이 버튼을 꾸욱, 180도로 솟구쳐 오르는데 머리 쪽으로 쏠렸던 장기들이 미끄덩 쑤욱 빠져 나가는 느낌이 또 그렇게나 좋은 거야(나 너무 변태 같나?ㅋㅋ). 그러니까 이번엔 또 장기들이 기특해죽겠는 거야. 얘네들이 매일 날 위해 열일하잖아. 이 소중한 존재들! (이 와중에 대장은 좀 더 열일하자ㅋㅋ)


그러니까 말야, 가끔은 말야, 거꾸로 살자고. 똑바로만 살면 이 기특한 새끼들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잖아. 내 몸인데! 내 장기인데! 그래 안 그래?!

#오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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