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뚜루 Oct 18. 2021

우리 동네 미용실에 감탄한 이유

프로의 세계

3살 쌍둥이머리칼이 조랑말 갈기처럼 이마를 덮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놔뒀다간 야생마가 될 듯하여 부리나케 동네 미용실 갔다.


"동시에 자를게요."


원장님의 말씀에 나와 남편은 일사분란하게 두 팀으로 나뉘었다. 나는 2호, 남편은 3호를 맡기로 했다. 지난번 이발 투쟁에선 울며불며 통곡을 했던 2호가 내 무릎에 폴짝 올라탔다. 제 딴에는 이게 생애 두 번째 이발이라 그런지 나름 여유롭게 거울을 응시하는 호기로움도 부리고 있었으니.


오히려 긴장한 건 나였다. 또 울면 어쩌지, 버둥거리다 다치면 어쩌지 오만 걱정을 하며 2호 어깨를 꽉 붙들었다. (긴장해서 거미손 된 내 손ㅋㅋㅋ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철컥 철컥. 이발을 예고하는 예비 가위질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내 몸의 모든 근육에 힘이 빡 들어가는 찰나(못 움직이게 더 꽉 포박하는 중인데), 2호 이발을 맡은 중년의 여자 선생 왈.


"이거 봐봐.(가위질 시늉하며) 이걸로 먼저 싹둑싹둑할게."


나에게 는 말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긴장했을 3살 꼬마 손님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한껏 상냥하고 다정한 언어로 선생님은 꼬마 손님에게 오늘의 서비스에 대해 찬찬히 설명하고 있었다. 2호 역시 알아들었다는 듯 슬쩍 고개를 까딱했다.


철컥 철컥. 후두둑 잘린 머리카락이 아이의 볼과 이마에 듬성듬성 내려앉았는데.


"(스펀지 집어 들고) 이거 봐라? 이걸로 얼굴에 묻은 머리카락 털어줄 거야."


2호는 얼굴에 스펀지가 닿자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꼬마 손님의 윤허(?)가 떨어지자마자 머리카락을 폴폴 털어내는 선생님. 그 둘을 보고 있자니 나는 한낱 구경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 엄마가 필요 없네?  여기 왜 있어?ㅋㅋ) 내 악력이 점점 헐거워졌다.


후로도 선생님은 2호에게 바리깡을 종류별로 설명해가며 세심한 이발을 이어갔고, 30분도 채 안 돼 2호는 바짝 깎은 머리카락 아래 훤한 이마를 드러내게 되었다.


"와! 너무 잘했어. 최고야!"


선생님의 엄지척에 뿌듯해진 2호는 저 역시 맞따봉을 날리며 제법 손님 행세를 했다. 저기요, 여기 나도 있거든요? 둘의 관계에 내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였으니 매우 성공적인 이발 투쟁, 아니 이발 경험이었다고 하겠다.



한편 그 시각.

순조롭게 진행되던 2호와는 달리, 3호의 이발 현장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으니. 출입문 앞에 서 꿈쩍도 않는 3호. 이발 투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남자 원장 선생님과의 기싸움이 팽팽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원장님은 좀체 일어서는 법이 없었다. 3호와 시선을 맞춘 채 오로지 대화로만 아이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똥꼬집 3호는 쉽사리 설득당할 리 없었고 3호의 스타일을 파악한 원장님은 급기야 사물로 빙의하기 시작하셨으니.


"(미용실 안으로 유인하며) 우와 여기 자동차 있다. 빵빵, 빵빵!"


여기 어린이집인 줄?ㅋㅋㅋ 하지만 반응 없는 3호.


"(오버액션으로 유인하며) 우와 여기 비행기다. 슈우우웅!"


원장님의 숱한 빙의체험이 있고 나서야 3호는 1mm씩 찔끔찔끔 걸음을 옮기더니, 드디어 감격의 38선을 넘듯 출입문 문턱을 훌렁 넘어 들어왔다. 노련하게 3호에게 이발가운 두르고 철컥 철컥 머리카락을 깎기 시작하는 원장님. 난 그날 미용사 두 분의 투혼을 바라보며  가지 확고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미용실 진짜 친절하구나, 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프로다!


어떤 연령대의 손님이든 능숙하게 다루는 진짜 프로구나. 가장 까다로울 법한, 말 안 통하는 유아들의 머리를 노련하게 깎기란 쉽지 않다. 집에서 아이들 셀프 이발을 해보니 그 고충을 더 알겠다.



생각해보면 내 주변엔 유난히 프로들이 많았다. 코로나 백신 접종 후유증 때문에 휴가를 냈던 날, 끙끙 앓는 엄마 좀 쉬라고 혼자서 쌍둥이를 씻기고 등원시키신 베이비시터 이모님, 버스에 올라탄 쌍둥이와 엄마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리던 버스기사님, 분리수거 용품을 한가득 짊어지고 나오면 "아이고, 무가와(무거워). 이리 내" 하며 꼭 내 짐을 빼앗아(?) 가시는 아파트 환경미화원 할머니.


배려와 친절이 몸에 배인 그 사람들에게서 나는 프로의식을 읽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질문하는 아이'로 키워야 하는 이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