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하굣길, 초등학교 1학년 딸(우리집 1호, 필명 유니)이 가로수를 가리키며 소스라쳤다. 1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 잿빛 물체가 덩그렁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아니 저게 진짜 뭐야? 물체의 정체를 가늠해보며 서서히 다가가려는 순간 물체가 퍼덕거렸다. 퍼덕, 퍼더덕. 인기척을 느꼈는지 물체가 나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나는 짧게 탄식을 내질렀다. 그건 물체가 아닌 생명체였다. 그 생명체의 이름은 바로 비둘기. 나뭇가지의 잔가지에 걸려 발이 꽁꽁 묶인 채 거꾸로 매달린 비둘기는 나에게 절규에 가까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비둘기와 그토록 깊은 아이 컨택트를 나눈 건 생애 처음이었달까.
"유니야, 잠깐만 기다려 봐."
"엄마, 무서워.. 비둘기 죽은 거야?"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 거는 나에게 1호가 물었다. 자신이 곧 낯선 생명체의 죽음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했다. 겨우 여덟 살에겐 충분히 두려울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를 북돋았다.
"아니, 우리가 구조해야지.우린 퍼피 구조대잖"
손이 닿지 않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사다리라도 있었으면!! 이럴 땐 어디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119? 동물구호단체? 아니. 나는 서슴없이 우리 동네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몇 달 전 동네에서 로드킬을 당한 비둘기 사체가 세찬 바람에 도로를 구르는 것을 보고 주민센터에 전화한 일이 있었다. 불쌍한 비둘기가 죽어 있다, 곧 아이들 하교시간인데 아이들이 충격받을까 봐 걱정이 된다, 근데어디에 도움을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선뜻 주민센터 직원이 나와주셨다.빨간 목장갑을 끼고서.
이번에도 그 빨간 목장갑 직원이 나오셨다. 다만 전처럼 혼자가 아니라 셋이었다. 생명체를 구하는 일에 사람 셋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비둘기 앞에서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내적 환희) 비둘기 너 임마, 이제 살았어 임마!
3인조 구조대가 사다리와 길쭉한 봉, 옷자락을 활용해 구조작업을 벌이는 광경을 멀찍이서 지켜보았다. 잠시 후. 푸드득 퍼덕, 비둘기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맞지? 너 맞지? 나는 방금 내 눈 앞을 가로지른 비둘기가 나와 깊은 아이 컨택트를 나눴던 비둘기와 동일한 조류이길 간절히 염원하면서, 넘성넘성 곁눈질을 하면서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달라는1호에게 내가 창작(?)한 근본 없는 동화를 들려주었다. 제목은 비둘기.
원래 비둘기는 세상에 흰비둘기뿐이었는데 욕심 많은 비둘기가 금은보화 광산에서 몰래 금은보화를 캐서 혼자만 잘먹고 잘살려다 잿빛으로 변해버렸고 그후 흰비둘기로부터 외면 당했대.
근본은 없지만 나름 권선징악 구조를 갖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비둘기란 무엇인가!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그 단어의 근원, 즉 뿌리를 얻을 때까지 탐구하라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이 마음에 얹히는 통에 검색창에 비둘기를 입력해보았다.
그런데 글쎄 이 비둘기가 우리나라에 5종, 전세계적으로 289종이나 있다는 게 아닌가! 심지어 우리나라 비둘기 중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흑비둘기(울릉도 등지에서 발견)라는 종도 존재한다고 하니, 비둘기의 위상이 새삼 드높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이 흑비둘기를 비롯하여 전 세계 비둘기들의 위풍당당한 면모를 찬찬히 감상하기 시작했는데..
오, 흑비둘기 엣지 있어!
흑비둘기 (출처: 두산백과)
오, 관비둘기 스웩 보소!
관비둘기 (출처: 두산백과)
오, 아프리카비둘기 색감 어쩔!
아프리카비둘기 (출처: 두산백과)
그렇게 비둘기의 엔티크한 감성을 누리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툭 튀어나온 그냥 비둘기(심지어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인 여의도 공원에서 촬영되었다는 녀석)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머금었던 들숨을 펑 터뜨리고 말았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나? 그냥 비둘긴데?
그냥.. 비둘기 (출처: 두산백과)
생각해보면 그냥 비둘기가 꼭 내 모습 같다. 특종을 팡팡 터뜨리는 기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콘텐츠로 이름을 날린 기획가도 아니고, 극본 공모전에 응시할 때마다 주르륵 미끄러지는 드라마 작가 지망생에다가 평범한 세 아이의 엄마. 여느 30대 여성처럼 보통의 나날을 보내는 가장 보통의 존재인 나, 김뚜루. 그런데 어쩌면 보통이란 단어가 주는 느슨하고 평온한 감각 덕분에 비로소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생애를 다룬 영화 '퀼'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시각장애인 주인을 잃은 안내견 퀼에게 훈련센터 소장이 하는 말이다.
넌 정말이지.. 보통의 맹도견이지만 최고의 보통 맹도견이었어.
보통의 생명체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그러고 보면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 비둘기는 보통의 그냥 비둘기이지만 최고의 보통 비둘기였고, 나는 보통의 사람이지만 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겐 최고의 보통에세이스트일 수 있다는 (근본 없는) 결론에 다다랐으니, 이런 근본 없는 글은 서둘러 마무리지어야 제대로 근본 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침표를 뚝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