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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무원 일기(공무도하가2-수지,노고산 숯불갈비)

by 하니오웰


나의 첫 공무원 발령지였던 수지출장소가 수지구청으로 승격한 날은 2005년 10월 31일.

내가 첫발령을 받아 3개월 근무하고 사표를 낸지 몇 개월 뒤의 일이다.

용인 시청은 2005년 7월에 16층짜리 당시 전국 넘버원 규모의 '황금 신청사'(당시 호화로움 등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음) 시대를 맞았으나 나는 그 '새 바람의 수혜'를 받아보지는 못 했다.

분당 신도시 인구의 급속한 유입으로 용인시 인구는 2005년 70만에서 2025년 현재 110만이 되었고 '반도체 클러스터' 등의 요인으로 증가 추세는 지속중이다.

'승진' 말고는 다른 보상 요인이 너무 적은 공무원 생활 중 승진 때문에 짜증날 때마다 나는 첫 직장이 뇌리에 반복적으로 스쳤다. 이후 세종시에 그 자리를 내어 주었지만 용인시의 고속 승진 속도는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였다.

나의 개인사에서도 가정은 소용 없겠지만 '남아 있었다면' 지금 사무관 근처를 맴돌고 있지 않았을까?


부자 동네였던 수지출장소의 건물은 최신식 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첫 출근 날의 기억은 전혀 없다.

발령 동기로 수서에 살고 얼굴이 새하얗고 키가 크고 이뻤던 80년생 행정직 여자 동생과, 나중에 세무서로 같이 옮기게 된 입담은 끝내주나 신뢰가 좀처럼 충족되지 않던 76년생 '입벌구' 형과, 서천에서 올라와 사랑의 쟁취에 열 올리던 74년 생 수수했던 형 세 명 정도가 기억이 난다.

퇴근 시간 이후를 기다려 고지서를 대량으로 뽑아 대는 큰 기계의 위용(아무나, 아무 때나 킬 수 없었음)에 놀랐던 기억과, 사무실의 실세였던 발화량이 압도적이었던 기능직 여사님, 노총각으로(지금 기준으로는 노총각이 아닐진데) 그냥 보면 천재임을 알 수 있던 커피를 하루에 5잔 이상 마시며 나한테 유독 친절했던 72년생 안 주임님이 있었다.

기세가 꺾인 나는 출근 마지막이던 세달 째에는 몸이 고되 고시원을 잡았다. 수지는 불야성이었지만 얄팍했던 나는 편의점을 전전했다. 상술한 80년 생은 칼퇴족, 76년 생은 이빨족(여자랑만 놀았음)이었고 74년 생 형은 집이 가난해 하루에 두끼만 먹는 전전긍긍 자린고비족이었다.

내 오랜 직업병이던 짝사랑이 그 때도 살짝 있었던 것 같다. 수서에 사는 친구 때문에 깊지는 않았던 선물 고민을 했었다.(지출은 안 함)

기억력이 안 좋은 내게 수지의 기억은 그리 많지 않지만 불유쾌의 느낌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시작'이 주는 어떤 설렘 때문이었리라.

처음부터 국가직으로 갈 것을 밝혔기 때문인지 안 주임님을 제외하고는 내게 정을 잘 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 어른들에게 '국세청'의 위상은 지방 세무직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았고 오랜 부유인 시절 끝의 합격 소식에 떨궈진 엄마의 눈물도 '국가직' 때문이었다.

그 때는 동시 합격시 모두 국가직으로 향했다. 요즘과는 완전 달랐던 양상이다.


2005년 1월 '국세공무원 교육원'에 입교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수원 파장동에 위치해 있고 3개월 합숙을 한다고 하여 많이 들떠 있던 와중에 '다음 합격 동기 카페'에서 입교 전에 모이자는 글이 올라왔다.

2004년 12월 눈 내리는 날이었고 장소는 마포에 있는 '노고산 숯불갈비'였다.

검사했다면 'ENFP'가 나왔을 가슴이 요동치던 시절이었고 그 날 나는 장렬히 산화했다. 욕과 싼마이 B급 감성을 휘날리며 모임의 중심에 서게된 날이었고 그 때 친해진 인연들과 고마운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그 당시 공무원 인기는 쓸데 없이 높았다. 긴 수험 생활을 끝내고 3개월 합숙을 앞둔 우리는 모두 발기차 있었다.

"우리 친구 이제부터 친구 아이가?"를 계속 날린 부산 출신 동갑 꿀벌맑눈광 영어 능통자 만이, 시츄 닮았던 이쁜 막내 연이, 곧 사무관을 달게 될 정이와 나중에 부부가 된 달변 건이와 많이 귀여웠던 진이, 모임을 위해 대전에서 올라온 주먹이 큰 독수리와 말 끝마다 '잘 했다'를 날려 주신 인자한 큰 형님 부형 등을 만났고 두 명 빼고는 지금도 연락이 닿고 있다. 열 명이 넘었는데 나머지는 헤깔려서 특정할 수 없다.

이후 우리는 계속 만났고 그 멤버들은 다음 1월 교육원에 입교해서 그대로 '서울팀'이 되었다.

나는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사당에서 엄마랑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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