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일어났는데 변기에서 멍 때리다가 20 분 남짓 흘려보냈다.
어제는 와이파이 끊긴 우리 딸처럼 바빴다.
엄마를 일찍 챙기러 가고 싶었지만, 정말 하루 종일 작은 틈 하나 내지 못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갈현동 집으로 돌아온 엄마를 만나고 왔다.
점점 아이가 되어 가는 울 엄마.
그저께 엄마를 퇴원시키는 날.
뒷자리에 탄 엄마가 갑자기.
"야야. 네 이모 남편이 너한테 뭐가 되지? 형부인가?"
'쿵.'
어제 아침, 이모가 엄마랑 통화하는데 엄마는 5일간의 병원 생활을 전혀 기억 못 하셨단다.
"오웰아. 언니가 전혀 기억을 못 해. 좀 멀리 여행을 다녀왔대. 이따가 영상자료원에 간다네"
"정말요? 어떻게 그러실 수가..."
엄마는 나랑 야간 진료 한방 병원에 가기로 그젯밤 약속을 다 해놓은 상태였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아무 곳도 가지 말고 집에서 쉬며 아들을 기다려 달라고 신신당부 해놓았지만.
그래도 잊어버릴 것이라 그 애정하는 문자도 보내놨지만 역시 소용 없었다.
전화도 문자도 안 받는다.
사무실 일에 매달리다보니 모퉁이 저 편으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어제 따라 정신 빼는 일이 계속 터졌다.
오후가 되어서야 이모의 카톡을 확인했다.
'바쁜가보구나.
톡으로 설명할게.
내가 언니네에서 며칠 지내며 그 곳 한방병원 물리치료를 같이 다니려고 해'
'언니가 어제 집에 가서 방이랑 마루 다 닦고 냉장고 속 치우고 일을 많이 했는지 허리가 계속 아프대'
눈물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섯 남매 중 가장 착한 막내 딸, 나의 막내 이모.
어릴 때부터 사나운 엄마보다 부드러운 이모를 나는 좋아했다.
엄마와 아홉 살 차이가 나는, 외할머니가 유난히 예뻐했던, 비단 같은 이모.
이 헤아릴 수 없는 고마움을 어떻게 새겨둘까. 참으로 갈 곳, 둘 곳 모를 마음량이다.
어릴 때 이모집에 놀러 갔을 때 '고스트 버스터즈'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나는 끝까지 보고 싶었고, 엄마는 집에 가자고 채근했는데 그 착한 이모가 엄마를 나무라며 끝까지 보게 해줬다.
그 날 이후 나는 더 이모 왕팬이 되었다.
카톡이 또 왔다.
'언니에게 무릎도 아프니 치료해달라고 말하랬더니 단칼에 그건 전부터 아팠던 것이고, 이정구 선생님 자녀는 거짓말로 이런 짓 하는거 아니라더라. 언니 치료비는 내가 다 낼테니 신경 쓰지 말아라.'
저녁 9시가 훌쩍 넘어서야 엄마와 이모를 보러 갔다.
이모에게 전화를 했더니 안 받으신다.
집 앞에 거의 다 가서 엄니한테 걸었더니 받는다.
"야야. 와? 집 앞 고기집이야. 지금 백세주 시켜놓고 홍이야 하고 놀고 있다. 내 걱정은 말고 운동이나 열심히 해라. 끊는다."
스르르 등장하니 엄마보다 이모가 더 반기신다.
손녀와 며느리, 아들이 갑자기 등장했는데 엄마는 무덤덤.
종알종알 중이시라 관심이 없다.
"오웰아. 전화 했었네. 고기 굽느라 정신 없었어. 엄마가 어찌 말이 많은지, 새까맣게 탄 것도 몸에 다 좋다며 먹는다. 신기한 언니야"
눈 윗자리 멍이 턱까지 내려온 천사 이모는 세상에 없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다.
사람을 귀신 같이 간파하는 하니는 며칠새 자주 본 이모 할머니가 좋은지 찰싹 붙어서 새로 구운 고기를 흡입한다.
엄마 집으로 돌아왔다.
이모는 무릎이 안 좋아 매계단을 힘들게 올라오셨다.
"야야. 이정구 선생님은 언제나..."
"언니, 자꾸 언니가 같은 아버지를 이정구 선생님이라 하니, 낯설어지려 그래. 존경은 원래 잘 하고 있었어."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아버지는 선생님 이상이야. 내가 어릴 때..."
손녀는 언제부턴가 친할머니가 말하기 시작하면 자동 웃음 장착이다.
아들, 며느리는 래퍼토리에 지겨움을 끌어올리는데, 역시 우리 셋 중 가장 큰 그릇이다.
아직은 귀여움이 더 많은 울 엄마.
내 자주 보러 간대이.
엄마의 시간이여, 부디 천천히 앉아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