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려면?(솔직함, 꾸준함)

by 하니오웰


나는 아무래도 '산문'을 더 쓰고 싶다.


계절의 경계나 아름다움 자체의 분별보다 인간의 '선악의 저편'과 '현상의 이면',

사람 사이의 투명토록 불투명한 거짓과 가식을 집어 보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에 자리잡은 사물과 사람을, 유심히 때로는 무심히 바라본다.

'형태'와 '마음'의 다채로운 빛깔들을, 노도처럼 밀려드는 이 '다양성'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터 잡아 '발견'하고 '기록' 하는 일은 대체 불가한 기쁨이다. 해볼수록 그렇다.


추상과 구체를 넘나들며, 단어를 고르고 배열을 바꾸고, 문장을 이어붙이는 '짓'들은

내게 강렬한 몸서리를 안겨준다.


글을 쓰려는데 내 독서가 짧은 것 같다.

글을 쓰려는데 내 솜씨가 후진 것 같다.

그 딴거 다 개나 줘버리면 된다.


글이 안 나올 땐 쥐어짜기보다, 음악을 틀고, 마음의 소리를 들어본다.

공기의 흐름을 느껴보고 '오늘' 말고 가까운 '어제'의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사람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 안에 ‘영혼의 샘물’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영감이 부딪히고 섞이면, 언어의 구조화 반응이 일어난다.

이 샘물은 매우 깊고 넓어서. 꺼내고 꺼내도 마르지가 않는다.


그런데 조건이 좀 있다.

우선 ‘솔직’해야한다.

글이라는게, 게다가 남들이 보는 글을 쓰려다 보면 마음의 브레이크가 좀 걸린다.

근데 이게 결국 내 글을 써야 하는 것이라.

나의 호흡으로 나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갈 때, 자판에, 생각의 속도에 탄력이 붙는다.


‘글’이라는게 좀 그렇다.

글이라는 것은 참 간사해서. 주인의, 화자의 진솔함의 정도에 따라 반응한다.

빨리 정확하게 느끼며, 머리끝, 마음끝이 솔직해야 글이 춤을 춘다. 지가 막 신나한다.

근데 화자가 꾸역꾸역 꾸미려고 밍기적거리면? 글이 삐친다. 숨는다.

그래서 저는 글의 제1의 생명력은 '솔직함' 이라 여긴다.

솔직함을 잃으면 글이 외로워진다.

솔직하게 쓰면 솔직한 필담이 온다. 사람은 다 비슷하다. 진심은 진심을 건드린다.


다른 하나는, '꾸준함'

쓰기 정말 싫은 날이 있다. 노트북이 괴물 같고, 브런치 계정을 닫아버리고 싶은 날이 있다.

괜시리 창밖의 ‘비’ 때문인 것도 같다. 하지만 노트북이랑 블로그, 비는 죄가 없다.

그런 날에도 그냥 한 줄 써 보는 거다. '하이쿠' 흉내라도 내보는거다.

사람에게는 ‘컨디션’이라는게 있고, 그날의 ‘분위기’라는게 있다.


일단 쓴다.

'이 글이 과연 ‘발행’해도 되는 글인가?'

'이건 어둠 속에서, 한석봉 엄마 옆에서 코 후비다 발로 쓴 글보다 못 한거 같은데?

그래도 ‘등록’을 눌러보면. 남겨보면. 쌓이면.

그러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나의 한 줄이 다음 한 줄을 호출하고, 나의 한 마디가 누군가의 두 마디로 돌아온다.

꾸준하면 글근육은 붙는다.


인간 상대의 가장 높은 지점과 나의 가장 낮은 지점을 ‘비교’한다.

그러고서 기울어져 있다고, 뒤뚱거린다고 투덜거린다.

근데 상대가 없어도 우린 모두 좌우 불균형이다.

아침의 나와, 점심의 나는 무게가 다르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중량이 다르다.


그러니 혹시라도 ‘남’과 비교하려는 생각이 들면,

세수 한 번 하고 오면 된다.

남의 눈꼽보다 내 눈꼽이 더 드러울 수 밖에 없으니까.

'꾸준함'이, '천재'를 결국 이긴다. 특히 글은 그렇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글쓰기’는.사람을, 삶을 바꿔놓는다.

‘읽기’와는 다르다.


'읽기'는 '시간을 다루는 방식'을 조금 바꿔놓지만,

‘쓰기’는 삶의 '국면' 자체를 바꿔 놓는다.


‘읽기’가 ‘답’이라면, ‘쓰기’는 ‘질문’이다.

'읽기'가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라면,

'쓰기'는 다음 책을 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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